동행

질문2: 2021년 9월 6일

divicom 2021. 9. 6. 12:08

추운 곳의 친구에게 보낼 양말을 사러 가는 길,

인도 한쪽에 차도를 등지고 앉은 여인이 보였습니다.

여인은 남루해도 껍질 벗긴 대파는 깔끔하고 예뻤습니다.

'저 대파를 사야지' 생각하는 찰나 집에 있는 대파가 떠올랐습니다.

양말부터 산 후에 생각하자고 그이를 지나쳤습니다.

 

십오 미터쯤 떨어진 양말 가게 옆에선 다른 여인이

직접 키운 얼갈이배추를 팔았습니다. 저 배추를 사다

국을 끓여야겠다 마음먹고 우선 양말 가게로 갔습니다.

그러나 겨울 양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빈손으로 나서니 얼갈이 파는 여인과 손님 하나가

한창 대거리 중이었습니다.

 

제법 기다린 후에야 얼갈이 이천 원어치를 사들고

갔던 길을 되돌아 오는데 대파 여인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게로 왔습니다. "저기서 뭐 팔아요? 뭐, 좋은 것 팔아요?"

부러움과 슬픔 같은 게 어린 눈이 저만치 얼갈이 여인쪽을 보았습니다.

"아, 얼갈이예요."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습니다.

 

얼갈이를 다듬는 줄곧 대파 여인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집에 대파가 아무리 많아도 대파를 샀어야 하는데... 많은 데도 샀다면

그이를 동정하는 건데 그게 옳은가...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무엇이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그이의 대파를 샀으면

그이가 차도를 등지고 앉아 있는 시간은 줄었겠구나...

 

대파를 마구 소비하고 다음 날 그이가 앉았던 곳으로 갔지만

그이는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도 그 동네에 볼일을 만들어

가보았지만 그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양말을 사지 못한 것, 대파를 사지 못한 것 모두

때를 맞추지 못한 소치입니다. 양말은 조금 더 추워지면 살 수 있겠지만

대파 여인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