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 10

'자연인' (2021년 8월 29일)

지구별, 대한민국, 서울. 이곳에 산 지 수십 년이지만 이곳은 여전히 낯설어 이곳을 걷다 보면 늘 여행 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진면목과 마주하지 못하는 여행은 허사... 제가 매일 하는 여행은 유의미한 걸까요?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여행을 통해 자연을 발견하고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지요. 서울 한복판에 살며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해본 사람은 알 겁니다. 그 일이 가능하다는 걸. 지리산 속이 '자연'이듯 서울 한복판도 '자연'이라는 걸. 1973년 처음 만나 꽤 오랫동안 친구가 되어주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 (Henry D. Thoreau: 1817-1862)... 오늘 문득 펼친 그의 일기에도 같은 생각이 있습니다. 1856년 8월 30일자 일기에서 몇 구절 옮겨둡니다. 이 일기가 쓰인..

오늘의 문장 2021.08.29

버스와 메타버스 (2021년 8월 25일)

어떤 단어가 얼마나 자주 쓰이는가 보면 그 사회 혹은 그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버스' 라고 하면 대중 교통 수단을 떠올리던 시대는 가고, 요즘은 그 버스보다 '메타버스(Metaverse)'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이는 것 같습니다. '메타버스'는 '더 높은, 초월한'을 뜻하는 영어 접두사 'meta'와 드라마 속 세계와 같은 '가상세계'를 뜻하는 영어 접미사 'verse'를 합성해 만든 말로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합니다. 뮤직비디오 속 아이돌들의 안무를 구매하여 내 아바타가 그들과 함께 춤추게 하는 일,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직접 만나지 않고 가상 세계에서 만나 회의를 진행하는 일... 모두 메타버스를 '타는' 일입니다. ..

동행 2021.08.25

어느 날의 독서 일기 (2021년 8월 22일)

새책을 읽지 못하니 노트에 적어둔 구절을 읽습니다. 박준상 교수의 에서 발췌한 구절들입니다. 91쪽부터는 모두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혁명적 정치인인 사드 후작 (1740-1814)에 관한 기술이거나, 사드의 말이라고 합니다. 사드의 이름에서 '가학증'을 뜻하는 '사디즘 (sadism)'이 나왔습니다. 말없음표는 단어나 문장이 생략됐음을 뜻합니다. 45쪽: "사상가가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입구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 '너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 니체 82쪽: 어떻게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91-92쪽: 사드는 절대적으로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글쓰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집요하게 수행한 작가이다... 다시 말해 그가 언어를 통해, 언어를 거쳐 완벽한 어둠으로..

오늘의 문장 2021.08.22

두려움에 갇힌 사람들에게 (2021년 8월 15일)

코로나19 팬데믹 공포가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고들 하지만 두려움에 잡혀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은 코로나19가 오기 전에도 두려움의 포로였습니다. 가진 것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미래가 현재보다 궁핍하거나 불편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두려워하는 사람에겐 모든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지요. 두려움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과 기관도 많았습니다. 정치인들과 종교기관이 대표적이지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두려움 바이러스' 또한 강력한 힘을 얻었습니다. '나는 바이러스 따윈 두렵지 않아!'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입으로 나오는 말과 마음 속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아주 많으니까요. 진실로 두려움이 없는..

오늘의 문장 2021.08.15

노년일기 87: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2021년 8월 12일)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나를 아는 당신을 알 뿐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 당신이 무엇으로 빚어졌는지 당신의 시간이 무엇으로 채워졌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나는 당신을 애인으로만 알았습니다 당신 눈길의 열기 당신 손길의 온도를 재는 데 급급했습니다 당신의 세포에 깃든 외로움 좌절 희망 사랑 부끄러움 거의 모든 것을 몰랐습니다 나는 당신을 시어머니로만 알았습니다 시어머니는 당신이 늦게 얻은 정체 중 하나였을 뿐인데 나는 당신을 아버지로만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잘해내려 무진 애썼던 역할 중 하나였을 뿐인데 나는 당신을 존경받는 선배로만 알았습니다 굶주렸던 어린 시절 눈칫밥 먹던 사춘기 인정받기 위해 사력하던 청년은 몰랐습니다 나에게 아무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나는 그이를 모릅니다 비늘 하나를 보고 물..

나의 이야기 2021.08.12

십년감수, 십년 터울 (2021년 8월 9일)

각종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한국어를 듣다 보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부정확한 한국어가 난무하기 때문입니다. 은어나 속어는 그러려니 하겠지만 누구나 일상 쓰는 말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유튜브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지상파 방송의 아나운서와 기자들, 출연진들은 제대로 된 우리말을 써야 하지만 그들조차 엉망입니다. 아나운서를 뽑을 때 발음보다 외모를 본다더니 그 말이 참말인가 봅니다. 이 나라엔 문화체육관광부가 있고 국어 관련 단체들도 여럿이지만 세계인들에게 한국어를 확산, 보급시키는 데는 열심일지 모르나 한국어 자체를 품격 있게 유지, 발전시키는 데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이 품격을 잃으면 말의 사용자, 즉 그 말을 사용하는 개인과 사회 또한 품격을 잃습니다. 지금 이 나라가 돈만 아는 ..

동행 2021.08.09

'노메달' 올림픽 영웅들 (2021년 8월 6일)

이 나라에서 가장 뒤처진 건 정치권과 방송계인 것 같습니다. 마침 올림픽이 진행 중이니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합종연횡과 경쟁자 헐뜯기에 바쁜 정치인들은 못 본 척하고 방송을 보며 느낀 점만 얘기합니다. 한마디로 올림픽에 관한 이 나라 텔레비전 방송국들의 수준은 부끄럽습니다. 아무리 중요한 경기라도 한국인 선수가 나오지 않으면 중계하지 않고, 한국 선수들이 나오는 게임은 온 방송사가 동시에 중계하고, 한국인 선수도 메달을 땄는가 아닌가에 따라 노골적으로 차별합니다. 그러나 올림픽 정신은 '메달'에 있지 않고 '자신을 넘어서서 신의 영역에 다다르려 하는 도전'에 있습니다. 우상혁, 우하람, 황선우... 이 진정한 올림피언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존경과 박수를 보냅니다. 경향의 눈 4등에게 보내는 갈채 차준철..

동행 2021.08.06

노년일기 86: '오스카'의 탄생 (2021년 8월 3일)

조카, 제자, 가까운 젊은이들이 결혼해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는 과정을 볼 때면 자랑스러우면서도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걸었던 길... 그 길에서 그들이 필연적으로 겪게 될 경험들 때문이겠지요. 잘 모르는 사람의 출산 소식을 들어도 '아, 그 사람 고생했겠다, 앞으로도 힘들겠구나' 하며 마음이 쓰이지만, 어린 시절에 저와 만나 엄마가 되는 친구들을 보면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아는 만큼 아프다'로 바꿔도 될 만큼... 그럴 때 제 아픈 마음을 달래주며 아기의 탄생이 가져온 기쁨에 몰입하게 하는 건, 아기 엄마가 된 그 친구에 대한 믿음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엄마라는 정체를 지고 지금껏 살았는데 그는 나보다 더 총명하고 단단한 친구다, 그러니 엄마라는 경험을 통해 나보다 ..

나의 이야기 2021.08.03

8월 1일의 질문 (2021년 8월 1일)

8월은 일요일에 왔습니다. 출장지에 하루 먼저 도착해 하루 쉬고 다음날부터 일하려는 사람 같습니다. 8월이 일요일에 온 것은 어쩌면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시간의 배려일지 모릅니다. '2021년에 들어선 지 일곱 달이 지났다, 너는 그 일곱 달을 뭐 하는 데 썼느냐?' 절박한 매미들의 울음 사이로 시간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2021년 8월 1일의 우리는 나날의 삶과 그 삶이 수반하는 무게에 눌려 질문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뫼비우스의 띠를 닮은 숫자 8 8월이야말로 잃어버린 질문을 찾아내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어디서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을 땐 19세기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 (Alfred, Lord Tennyson: 1809-1892)의 시 '합창 (Choric Song)의 2연에서 시작..

오늘의 문장 2021.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