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일기 112: 그 집 앞 (2022년 3월 16일)

오래 전 어떤 집에 사는 이를 보고 싶어 그 집 앞을

서성인 적이 있습니다. 저를 보고 싶어 제 집 앞을

서성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시간은 그리움이 쌓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집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집에 살던 이는 떠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집 앞을 서성이는 건

지나간 날들로의 여행이고 재회를 꿈꾸는 시간입니다.

 

우리 가족과 15년을 산 '꼬미'가 저 세상으로 간 지 20년이

되어가지만 저는 아직 그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산책길에서 개나 강아지, 고양이들을 만나면

늘 꼬미가 떠오르고 잘해 주지 못한 게 미안합니다.

 

요즘은 '흰둥이'네 집 앞을 서성이는 일이 잦습니다.

흰둥이는 하얀 개여서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흰둥이의 가족들은 다르게 부르겠지요.

어떤 종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몸집은 강아지보다 개에 

가깝습니다.

 

흰둥이는 큰길에서 우리 집으로 오는 여러 개의 골목 중

하나의 초입에 있는 집에서 삽니다. 그 이층집은 대문도

집도 하얀데 흰둥이는 속이 들여다 보이는 하얀 쇠창살

대문 너머에 주로 머뭅니다. 마당이 넓으니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밖이 보이는 곳이 좋은가 봅니다.

흰둥이를 처음 본 것도 그가 높고 하얀 담 위에 서서

바깥세상을 구경할 때였습니다.

 

흰둥이네 집 건너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그 집을 바라보면 담 위에 흰둥이가 서 있곤 합니다.

거기서 흰둥이를 보고 손을 흔들며 "흰둥아!" 하고

외치는 적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담 위의 흰둥이를 보고 흰둥아!하고 외쳤는데

함께 신호를 기다리던 중년 여인이 저를 보며 웃었습니다.

저처럼 흰둥이를 좋아하나 보다 생각하며 함께 길을 건넜는데

그 여인이 흰둥이네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왜 그런지...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집 앞을 서성이며 대문 안쪽의 흰둥이를 향해 "흰둥아, 안녕?"

하면 "크으엉 컹!" 하던 흰둥이가 언제부턴가 짖지 않더니

이젠 소리 없이 저를 바라봅니다. 마음이 아프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흰둥이의 얼굴이 자꾸 꼬미의 얼굴을 닮아갑니다.

생후 2개월에 우리 가족이 되어 만 15년을 살고 떠난 꼬미...

요즘 흰둥이의 얼굴은 꼬미의 마지막 몇 달 얼굴입니다. 

 

이승을 벗어나기 일주일 전부터는 좋아하던 음식을 끊고

물만 조금씩 먹던 꼬미... 떠나기 2, 3일 전부터는 물도 먹지 않던 꼬미...

훗날 생각하니 꼬미는 떠날 날을 정해두었는데

어리석은 저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꼬미도 아직 보내지 못했는데 흰둥이는...

무거운 마음으로 하얀 대문 앞을 서성입니다.

어제 본 흰둥이가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