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레놀을 먹어도 열이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신을 구속 당한 듯
꼼짝 못 하고 누워 보냈습니다. (<걸리버 여행기>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과로라고 할 만한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는 거지? 남의 몸 같은 제 몸을 관찰
또 관찰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노화는 계단식으로 진행된다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평평한 듯한 길을 걷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는 것, 그게
노화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계단에서 넘어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가느다란 난간을
붙잡고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위태로운 계단을
몇 개 내려가고 나면 다시 평평한 길이 나오지만,
살 만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계단이 나타납니다.
두꺼운 계단 두어 개를 내려가 층계참에 이른 느낌이
듭니다. 그새 창밖엔 비가 내렸고,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나쁨과 보통 사이를 오갔고, 베란다의
토마토 나무엔 초록 구슬 세 개가 열렸습니다.
이 내리막길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층계참의 시간이 따뜻한 물 속처럼 안온합니다.
층계참은 내려온 계단과 내려갈 계단을 두루 볼 수
있는 곳, 여기서 마음을 다잡으면 다시 계단이
나타나도 당황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