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온 지 20년이 조금
못 되었습니다. 학교가 많아 젊은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마트와 식당, 카페,
편의점 등 가게가 많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때는 마트가 지금보다 더 많았습니다.
제법 큰 것만 꼽아도 농협하나로마트, 홈마트,
롯데수퍼 등이 있었는데, 몇 년 전 이마트에브리데이가
생기면서 제일 먼저 농협마트가 사라졌습니다.
그 마트가 사라진 건 조금도 놀랍지 않았습니다.
농협이라 농부들과 직거래할 테니 신선식품이
싸겠구나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공산품도 아니고 채소와 과일이 다른 마트보다
비싼 건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곳 직원들에게선 일터에 있는 일꾼의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다른 농협마트의 직원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들을 보며
농협은 방만하게 경영하는 곳이구나, 돈이 있어도
농협에 맡기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마트에브리데이가 생길 때쯤 롯데수퍼가
롯데 프레시 & 델리로 간판을 바꿨습니다.
국민연금 제휴 신용카드를 롯데수퍼에서 사용하면
아주 적은 돈이나마 할인을 받을 수 있었는데
간판이 바뀐 후엔 할인이 사라졌습니다.
이마트에선 할인이 되니 조금 멀어도 그곳을
찾는 일이 늘었습니다.
이마트에브리데이와 롯데 프레시는 여러 면에서
달랐습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속도와
긴장이었습니다. 때맞춰 새 물건을 들여오는 게
속도라면, 긴장은 점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업무
태도를 뜻합니다.
처음에는 비슷한가 했지만 점차 격차가 벌어지더니
마침내 롯데가 문을 닫기에 이르렀습니다.
늘 자다 나온 듯하던 점장과 자주 비어있던 진열장들이
떠오릅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문을 닫으니
불편해지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롯데에선 저 마트가 왜 문을 닫게 되었는지
분석하겠지요. 분석의 결과가 어떻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 마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판매가
무엇인지 몰랐거나 잊었다는 것이지요. 뭔가를
판다는 건 자기를 파는 것, 즉 자기의 시간과 노력을
파는 것입니다.
롯데가 떠난 자리는 통행이 많은 곳이니 또 마트와
같은 상업시설이 들어설 겁니다. 그곳의 새 주인들이
판매가 무엇인지 알고 시작하길, 스스로 문 닫는
날까지 그것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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