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788

'희극인' 박지선의 죽음을 애도하며 (2020년 11월 3일)

어제 오전 내내 데스크톱 앞에 앉아 있었지만 박지선 씨가 이승을 떠난 걸 몰랐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온 룸메이트가 그의 죽음을 알려주는데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에 대한 믿음이 너무 커서 그의 고통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나 봅니다. 그의 때이른 죽음을 마음 깊이 애도하며 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너무 일찍 죽은 자신의 동생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을 아래에 옮겨둡니다. 맨 아래 링크는 박지선 씨의 영전에 바치는 노래입니다. 지선씨가 이곳에 있든 그곳에 있든 지선씨를 사랑하고 응원합니다. 지선씨...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부디 큰 자유와 평안을 누리소서! P. 171 "I know he's dead! Don't you think I know that? I can still like him, tho..

동행 2020.11.03

노년일기 57: 부음, 갑작스런 (2020년 10월 25일)

오랜만에 시내에 나가 존경하는 윤석남 선생님과 차와 담소를 나누고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족들과 평소보다 늦은 저녁식사를 막 마쳤을 때 전화에서 문자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누굴까 기대하며 전화를 여니 부음이었습니다. 나흘 전 아파트 동대표회의에서 만나 대화와 미소를 나눴던 아파트 소장님의 부음. 순식간에 머리가 띵해지며 숨쉬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막 70세를 넘긴 건강한 분이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수 있는가, 왜 그분께 좀 더 잘해드리지 못했던가, 의문과 탄식이 이어졌습니다. 조금 지나서야, 댁에 화재가 발생했고 소장님이 불을 끄러 들어갔다가 돌아가셨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갑자기 죽음을 맞은 소장님과, 화재를 당하고 남편이자 아버지인 소장님까지 잃은 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동행 2020.10.25

어떤 풍경1 (2020년 10월 12일)

베이커리카페의 5인용 남색 소파에 바랜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노인이 홀로 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봅니다. 음료도 없이 빵도 없이 한참 들여다보다가 창가의 1인 석으로 옮겨 앉습니다. 노인이 앉았던 소파에 그이 나이의 십분의 일쯤 되어 보이는 사내 아이가 털썩 통통한 몸을 앉힙니다. 노란 색 티셔츠는 새 것이어도 표정은 조금 전 노인을 닮았습니다. 음료도 없이 빵도 없이 아이도 홀로 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봅니다. 웃음이 납니다.

동행 2020.10.12

노년일기 54: ‘오륙남’ (2020년 9월 29일)

내일모레는 추석이고 글피는 ‘노인의 날’입니다. 추석과 ‘노인의 날’엔 황혼이 깃들어 있습니다. 황혼은 만물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시간입니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 또한 인생의 황혼녘입니다. 그 시기는 ‘지천명(知天命)’ 즉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50세부터입니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과 SNS에는 5,60대 남자를 뜻하는 ‘오륙남’이라는 신조어가 비아냥조로 오르내립니다. ‘오륙남’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널리 퍼진 말입니다. 그 전에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이는 5, 60대 남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존재는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마스크를 쓰라는 운전기사나 다른 승객의 말을 듣는 대신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5, 60대 남성..

동행 2020.09.29

자식은 스승 (2020년 9월 25일)

어제 오후 동네 마트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트 조금 못 미쳐 놀이터가 있는데 마트와 놀이터 사이의 찻길을 따라 승용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그 차들 중 한 대가 왕~왕~~ 반복적으로 울어댔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차를 건드렸나 하고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머리가 아팠습니다. 차에 무슨 일이 있나 보려고 다가가는데 갑자기 조수석 문이 열리며 어린 여자아이 셋이 튀어나왔습니다. 다섯 살부터 일곱 살쯤 연년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모두 겁에 질려 있었는데 특히 둘째가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큰아이가 두 동생에게 “엄마한테 가자!”고 하더니 셋이 함께 죽어라고 내달렸습니다. 마트 문을 들어서자 계산대 앞에 줄 서 있는 엄마와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둘째 아이는 여전히 울고 나머지 두..

동행 2020.09.25

한국 의사, 독일 의사 (2020년 9월 17일)

오늘 아침 신문에서 한국과 독일의 의사들과 두 나라의 의료체계를 비교한 칼럼을 보았습니다. 이 나라에는 '돈 잘 버는' 직업이라 의사가 되는 사람이 많지만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고 싶어 의사가 된 사람도 많을 겁니다. 아래 칼럼이 그 진짜 의사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길 바랍니다. 의료는 공공재여야 한다 송현숙 논설위원 song@kyunghyang.com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 의사파업 봉합 직후 들려온 독일 의사들의 소식은 그야말로 딴 세상 이야기였다.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인구당 의사 수가 2배 가까이 많은데도 의회에서 의대 입학 정원 50% 확대 추진을 밝혔다. 쟁점은 같지만 독일 의사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 인력 확대를 요구해 온 독일 의료계는 이 방안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동행 2020.09.17

노년일기 51: 요양병원과 존엄한 죽음 (2020년 9월 15일)

골목길에 떨어진 푸른 감들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매달린 채 주홍으로 물든다 해도 감의 미래는 뻔합니다.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거나 꼬빌꼬빌 마르도록 남겨졌다가 까치밥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길에 떨어져 구르는 덜 익은 감을 안타까워하는 건, 젊은이의 죽음을 더욱 슬퍼하는 것과 같은 마음의 발로일 겁니다. 그러나 바로 관에 들어가 누워도 놀랍지 않을 모습의 노인이 죽을 듯 죽을 듯 죽지 않아 천덕꾸러기가 되는 걸 보면 때 이른 죽음만이 인간다운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다운 죽음은 무엇보다 합당한 슬픔과 애달픔을 자아내는 죽음이니까요. 며칠 전 한국방송(KBS)의 ‘시사기획, 창’에서 요양병원의 실태를 보았습니다.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요양병원의 환자는 곧 ..

동행 2020.09.15

의사고시에 대한 이재명 지사 의견, 동의함 (2020년 9월 12일)

의사 자격 국가고시를 거부한 의과대학 학생들의 '구제' 운운하는 얘기를 들으면 쓴웃음이 나옵니다. 의과대학 학생들은 의사가 아닙니다. 아직 의사가 되기 전인 학생들이 의사들의 이익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의사들이 벌이는 행동에 동조하느라 국가고시에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의사들과 정부 간에 합의가 이루어졌으니 의과대학생들에게 다시 국가고시를 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얘기를 의대 교수들이 하고 있습니다. 교수라는 사람들이 이러니 그들에게서 배운 제자들이 어떨지 짐작이 갑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이 사안에 대해 한 얘기를 연합뉴스에서 읽었습니다. 동의합니다! ------------------------------------------------------ 이재명 "의사고시 거부 의대생 구제, 원..

동행 2020.09.12

최고의 버스기사 (2020년 9월 11일)

신문은 하루 지나면 신문지가 됩니다. 어떤 기사는 신문지와 함께 쓰레기가 되고 어떤 기사는 역사가 되거나 독자의 기억 속에 자리를 잡습니다. '최고의 버스기사'라는 제목의 칼럼은 며칠 전에 보았는데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아래에 옮겨둡니다. 글을 쓴 하수정 씨가 271번 버스 기사가 상을 받으면 좋겠다고 하는 걸 보니 언젠가 제가 한국일보에 272번 버스의 친절한 기사 나원일 씨에 대해 썼던 게 떠오릅니다. 나원일 씨는 여전히 272 버스에서 일하고 있을까요?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정동칼럼]최고의 버스기사 하수정 북유럽연구자 우리말로 치면 ‘중용’쯤 되는 ‘라곰’을 사회 규범으로 여기는 스웨덴은 ‘최고’나 ‘1등’에 별 집착이 없는 나라다. 그런데 스웨덴에 이례적으로 ‘최고’를 뽑는 대회가 있다. 바로..

동행 2020.09.11

‘의사(醫師)’ 말고 ‘의사(醫事)’ (2020년 9월 3일)

어린 시절엔 ‘빨간약’이 만병통치약이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놀다 넘어지면 얼른 집으로 달려가 ‘빨간약’을 가져다 발라주었습니다. 일찍부터 허리가 아프셨던 아버지는 허리를 주무르는 세 딸의 손 중에서 제 손이 제일 시원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까닭이었을까요? 공부보다 책 읽기를 좋아하던 제가 고3이 되자 아버지는 의대를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형편인지라 국립대에 가야 했지만 제 성적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서울대학교는 전 과목 시험을 치르게 했는데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전 과목이 아닌 선택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그래도 시험은 보고 싶었습니다. 시험을 치지 않은 걸 두고두고..

동행 2020.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