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자식은 스승 (2020년 9월 25일)

divicom 2020. 9. 25. 22:11

어제 오후 동네 마트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트 조금 못 미쳐 놀이터가 있는데

마트와 놀이터 사이의 찻길을 따라 승용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그 차들 중 한 대가 왕~왕~~ 반복적으로

울어댔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차를 건드렸나 하고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머리가 아팠습니다.

 

차에 무슨 일이 있나 보려고 다가가는데

갑자기 조수석 문이 열리며 어린 여자아이 셋이

튀어나왔습니다. 다섯 살부터 일곱 살쯤

연년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모두 겁에 질려 있었는데

특히 둘째가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큰아이가 두 동생에게 “엄마한테 가자!”고 하더니

셋이 함께 죽어라고 내달렸습니다.

 

마트 문을 들어서자 계산대 앞에 줄 서 있는 엄마와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둘째 아이는 여전히 울고

나머지 두 아이는 흥분한 어조로 상황을 설명하는데

엄마는 당황해서인지 아이들 말을 듣는 대신

야단치느라 바빴습니다.

 

엄마는 ‘잠깐’ 마트에 다녀올 동안 차에 있으라며

아이들을 차에 둔 채 차문을 잠갔을 거고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문을 열고 나가고 싶어

이것저것 손대다가 왕왕거리는 소리를 내게 되었을 거고,

아무리 해도 그 소리가 멈추지 않으니 겁이 났던 거겠지요.

 

어찌 생각하면 소음 정도의 문제로 끝났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뭔가를 손대어 차가

움직였거나,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차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들을 태운 채 달아나 버렸을 수도 있으니까요.

 

장을 보고 돌아와서도 아이들 생각이 났습니다.

왜 차 안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가만히 있지 않고 이것저것 만져서 시끄럽게 했느냐고

집에 가서 엄마한테 또 혼난 건 아닐까,

특히 둘째가 크게 울어서 더 혼나지나 않았을까...

 

그 엄마와 얘기할 수 있다면 아이들을 대신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는 게 아이들이라고...

마침 바로 옆의 놀이터에 아이들이 많았으니

딸들을 차에 두는 대신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라고

했으면 좋지 않았겠느냐고... 물론 ‘무서운 세상’이라

생각해서 그러지 않았겠지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귀여운 딸이 셋이나 있지만 엄마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모 노릇이 어려운 건 자신의 행, 불행과 상관없이

부모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불행하다고 자식에게 불행한 모습을 보이면

나의 불행이 자식에게 전이됩니다.

아이들은 잉크 먹는 종이와 같아, 함께 있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밝았다 어두웠다 하니까요.

 

물론 자신의 기분과 상관없이 늘 부모답게

행동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노력하면 아이들과 함께 자랄 수 있다지만

자식과 함께 성장, 성숙하는 엄마는 많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저도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생일을 맞은 제 아이가 자신을 키우는 동안

저도 저를 키웠는지 의문입니다.

좀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 반성하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어제 마트에서 본 세 딸의 엄마도

어제의 일을 반성했으면 좋겠습니다.

반성만이 개선의 시발점일 테니까요.

 

아, 이제야 알겠습니다.

학창시절 선생님들이 반성문을 쓰라 하시던 이유를.

그리고, 늘 반성 거리를 주는 자식이 스승인 이유도.

 

내 스승이여, 나를 엄마로 만들어주어 감사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