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51: 요양병원과 존엄한 죽음 (2020년 9월 15일)

divicom 2020. 9. 15. 10:16

골목길에 떨어진 푸른 감들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매달린 채 주홍으로 물든다 해도

감의 미래는 뻔합니다.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거나

꼬빌꼬빌 마르도록 남겨졌다가 까치밥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길에 떨어져 구르는 덜 익은 감을 안타까워하는 건,

젊은이의 죽음을 더욱 슬퍼하는 것과 같은 마음의 발로일 겁니다.

 

그러나 바로 관에 들어가 누워도 놀랍지 않을 모습의 노인이

죽을 듯 죽을 듯 죽지 않아 천덕꾸러기가 되는 걸 보면

때 이른 죽음만이 인간다운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다운 죽음은 무엇보다 합당한 슬픔과

애달픔을 자아내는 죽음이니까요.

 

며칠 전 한국방송(KBS)의 ‘시사기획, 창’에서

요양병원의 실태를 보았습니다.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요양병원의 환자는 곧

돈과 연결된다, 환자가 많아야 병원의 수입도 많다,

환자가 많으면 간병인, 요양보호사를 포함해

의료 인력이 많아야 하지만 그들을 고용하려면 돈이 들어

병원 수입이 줄어든다, 그래서 그들을 필요한 만큼 고용하는 대신

환자를 늘 수면상태에 머물게 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주사한다,

환자들은 주사약의 영향 아래 계속 잠을 자며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상태에 머문다.

 

한마디로, 끔찍했습니다.

그렇게 환자를 죽음에 이를 때까지 '수용'하면서,

환자를 더 많이 유치하려고 요양병원들이 경쟁을 벌인다고 합니다.

의료가 산업이 되면서 인간은 돈벌이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지만

남의 죽음을 유예 혹은 이용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요양’의 본래 뜻은 ‘휴양하면서 조리하여 병을 치료함’이지만

지금 이 나라의 요양병원엔 ‘휴양’도 ‘조리’도 ‘치료’도 없습니다.

허울 좋은 요양병원을 없애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다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존엄한 죽음의 집’을 만들어주세요.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죽음의 순간과 그 후를 준비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