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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일기 54: ‘오륙남’ (2020년 9월 29일)

divicom 2020. 9. 29. 15:50

내일모레는 추석이고 글피는 ‘노인의 날’입니다.

추석과 ‘노인의 날’엔 황혼이 깃들어 있습니다.

황혼은 만물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시간입니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 또한 인생의 황혼녘입니다.

그 시기는 ‘지천명(知天命)’ 즉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50세부터입니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과 SNS에는 5,60대 남자를 뜻하는

‘오륙남’이라는 신조어가 비아냥조로 오르내립니다. 

 

‘오륙남’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널리 퍼진 말입니다.

그 전에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이는 5, 60대 남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존재는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마스크를 쓰라는

운전기사나 다른 승객의 말을 듣는 대신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5, 60대 남성들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들부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화를 내는데

왜 하필 5,60대 남성들의 ‘화’만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그건 아마도 그 사람들의 감정적 폭발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누군가의 ‘화’가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면 ‘공적인 분노’이거나

합리적 분노여야 합니다. 공적으로 자행된 부정에 대한 분노나,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나 사건으로 인한 분노여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요즘 같은 상황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마스크를

쓰라고 할 때 미안해하며 얼른 쓰는 대신, 네가 뭔데 내게

마스크를 쓰라 하느냐고 따지는 것은 공적인 분노도 아니고

합리적 분노도 아닙니다. 그러니 신조어 잘 만드는 젊은이들의

놀잇감이 되어 ‘오륙남’으로 불리는 것이지요.

 

그러면 5, 60대 남성들은 왜 그리 화를 잘 내는 걸까요?

사람마다 다른 사정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세상이 나를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요?

 

자신은 아직 힘도 있고 능력도 있어 모든 것을 예전만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이 자신을 한물간 사람으로

취급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는 것이지요. 늘 보글보글

화를 끓이며 지내다가 아주 사소한 빌미라도 발견하면,

남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폭발합니다.

 

‘오륙남’을 포함해 쉽게 화내는 노인들을 보면 대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불행의 이유는 ‘자신이 의당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또래여도 ‘자신이 의당 받아야

할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화를 내지 않습니다.

 

‘화’는 내는 사람에 상관없이 두루 추한 것이지만

나이든 사람의 화는 젊은이의 화보다 더 흉합니다.

나이가 들면 대개 자신과 세상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어,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일 만한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오륙남’들이든 누구든,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

화를 내는 분들은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세상이 보는 자신이 같은지.

 

저는 저 자신에겐 가끔 화를 내지만 주변과 세상엔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해는 지는데 갈 길은 머니’ 저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고, 할 수 있는 것은 적고 할 수 없는 것은

많은 제가 굶어 죽지 않고 살아서 때때로 저를 돌아볼 수 있으니

감사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