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최고의 버스기사 (2020년 9월 11일)

divicom 2020. 9. 11. 02:08

신문은 하루 지나면 신문지가 됩니다.

어떤 기사는 신문지와 함께 쓰레기가 되고

어떤 기사는 역사가 되거나 독자의 기억 속에 자리를 잡습니다.

 

'최고의 버스기사'라는 제목의 칼럼은 며칠 전에 보았는데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아래에 옮겨둡니다.

 

글을 쓴 하수정 씨가 271번 버스 기사가 상을 받으면 좋겠다고 하는 걸 보니

언젠가 제가 한국일보에 272번 버스의 친절한 기사 나원일 씨에 대해 썼던 게

떠오릅니다. 나원일 씨는 여전히 272 버스에서 일하고 있을까요?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정동칼럼]최고의 버스기사

하수정 북유럽연구자

 

우리말로 치면 ‘중용’쯤 되는 ‘라곰’을 사회 규범으로 여기는 스웨덴은 ‘최고’나 ‘1등’에 별 집착이 없는 나라다. 그런데 스웨덴에 이례적으로 ‘최고’를 뽑는 대회가 있다. 바로 오늘, 9월7일에 스톡홀름에서 벌어지는 ‘스웨덴 최고의 버스기사 선발대회(Sveriges basta bussforare)’다. 우승자는 그날 주요 뉴스에 소개되고 각종 매체에 인터뷰가 실릴 만큼 나름 유명한 대회로 자리 잡았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자

2010년을 첫해로 올해로 11회째를 맞는 최고의 버스기사 선발대회가 시작된 계기는 버스기사 구인난 때문이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스웨덴 사회에서 때때로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버스기사는 그다지 매력적인 직업이 아니었는지 필요한 인원수에 비해 지원자가 적었다. 그러자 스웨덴 전국 각지 300여버스 운송업체를 회원사로 둔 운수회사협회가 나서 버스 운전기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리고, 버스기사의 자긍심을 높여 최고의 기사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며 대회를 시작했다. 운수협회와 교통 전문매체가 주최하고 스웨덴 노동부, 직업학교, 운전면허 학원, 벤츠를 비롯한 버스 제조사가 다양한 방식의 후원으로 참여한다.

 

그럼 최고의 버스기사를 어떻게 뽑느냐? 버스 운전자에게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를 생각해보자. 매끄럽고 안전하게 운전해야 하고, 승객에게 친절하고,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역량이 있고, 환경을 생각해 연료를 절감하며 운행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최고’라는 명칭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고의 버스기사’가 되려면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매년 6월 초 대회 공지가 뜨면 전국에서 대략 500명가량의 버스기사가 대회 참가를 신청한다. 1차는 필기시험이다. 바뀌는 교통법규를 계속 숙지하고 있는지, 여러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문제를 푼다. 필기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은 32명을 추리고 2차 평가를 거쳐 총 16명에게 대회장에서 치르는 실기 시험, 즉 최종 시험 기회가 주어진다.

 

대회 당일에는 스톡홀름 북쪽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최종 후보 16명이 주어진 코스를 주행한다. 다섯 가지를 보는데 미끄러운 구간 주행,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 대응, 응급 대처, 연료절감, 주행 기술과 승차감까지 모두가 측정대상이다. 주행 기술 측정 구간이 특히 까다롭다. 좁은 도로 곳곳에 놓인 고깔을 매끄럽게 피해가야 한다. 그밖에 긴급 상황에서 응급처치를 하거나 소화기를 사용해 불을 끄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자질이 필요하다. 바로 에코 드라이빙, 환경을 생각하는 운전이다. 환경보호 인식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앞선다는 스웨덴은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도 이에 대한 항목이 있다. 예를 들면 도로 주행 시 A에서 B지점까지 갈 때 연료를 최대한 적게 쓰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어떤 구간을 선택하느냐와 함께 운전 습관으로도 연료 사용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필기부터 다섯 단계의 실기를 최고의 기술로 통과했다면 그야말로 지덕체를 갖춘 최고의 기사라 부를 만하다.

 

까다로운 선발 과정에도 불구하고 우승자가 얻는 것은 소박하다. 그해 ‘최고의 운전기사’라는 호칭과 80만원 상당의 상품권이 전부인데 그나마 거기서 세금으로 30%를 뗀다. 주최 측이 너무 짜다 싶지만 참가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최고의 버스기사 선발대회는 업계의 연례 행사로 자리 잡아 대회 우승자가 어느 회사 소속인지, 회사별로 몇 명이나 최종 후보에 올랐는지 업체 간 경쟁과 응원이 뜨겁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50명 이상 집회가 금지되어 필수 관계자만 참관하고 대신 온라인으로 중계한다.

 

지난해인 2019년 최고의 버스기사 대회 우승자는 데니 바우어로 스웨덴 국가대표 축구팀 버스 기사였다. 바우어는 스웨덴은 물론 유럽 전역을 달린 경력 26년 차 베테랑 버스 기사다. 우승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1등 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 “평소처럼 했다”고 답했다. “결승에 오른 모두가 최고의 운전기사”라는 겸양의 말과 함께 “26년 운전경력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기분”이라고 수상소감을 전했는데 그 말이 참 좋았다.

 

모든 직업은 임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전문직이 된다. 그 직업으로 나와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면 감사하고 숭고한 일이다. 2020년 스웨덴 최고의 버스기사 선발 대회 결승 진출자 명단을 보니 내가 살던 동네를 운행하는 버스 회사에서 두 분이 올랐다. 되돌아보니 버스의 코너링이 유난히 매끄럽고 흔들림이 적었다.

 

한국에도 이런 대회가 생기면 어떨까? 내가 타는 271번 노선 기사님이 뽑히면 정말 기쁠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9070300015#csidxf7b5989523c45dc98e102308d633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