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882

노년일기 137: 다음 카카오처럼은 (2022년 10월 19일)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13년 전에 포털사이트 '다음'에 블로그를 열었습니다. 사교를 좋아하지 않아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적은 만큼 블로그를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목소리를 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다음 블로그'에 글을 쓰는 동안 '다음 블로그'는 여러 차례 변화를 꾀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변화는 늘 개선 아닌 개악이었습니다. 지난 9월 '다음 블로그'가 없어지니 '티스토리'로 이전하라는 최후통첩을 받고 티스토리로 이전하면서도 늘 불안했습니다. 이번 변화는 또 어떤 개악으로 끝날까... 그런데 지난 주말 다음 카카오 데이터센터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는 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카카오그룹에 속한 128개 회사들이 며칠 동안이나 제대로 ..

나의 이야기 2022.10.19

노년일기 136: 사이좋은 모녀 (2022년 10월 12일)

며칠 전 좋아하는 카페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카페 입구에서 바라본 너른 창가 자리에 중년 여인이 신을 신지 않은 발을 의자 팔걸이에 걸쳐 놓고 앉아 있었습니다.맨 다리가 팔걸이에 걸쳐진 채 덜렁거리는 모양이 끔찍했습니다. 여인의 건너편에는 젊은 여인이 앉아 있는데, 그 모양이 아무렇지 않은 듯 한참 대화 중이었습니다.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났지만 그 집의 커피와 음악을 따라올 곳이 없으니 하는 수 없이 들어갔습니다. 두 여인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는데 그들의 큰 목소리가 거기까지 오니 오래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어나 나가니 카페 주인 정진씨가 따라나왔습니다."저 사람들... 끔찍하네요. 내가 가서 얘기할까요?발 내리라고?" 제가 말하자 저보다 현명한 정진씨가 말했습..

나의 이야기 2022.10.12

송현동... 묻고 싶어도 묻지 않는(2022년 10월 8일)

백여 년 동안 한국인의 발길이 닿을 수 없었던 송현동 너른 땅, 일제와 미제가 사용하던 서울 한복판 만 평 부지가 이제야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신문, 방송, 인터넷이 요란합니다. 우선 '녹지 광장'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한 후 훗날 부자가 기증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미술관을 세우거나 다른 시설들을 지을 거라 합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6%A1%ED%98%84%EB%8F%99_(%EC%84%9C%EC%9A%B8) 송현동 (서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송현동(松峴洞)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법정동이다. 행정동으로는 삼청동에 포함된다. 송현(松峴)이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에 이 곳이 소나무 언덕이었기에 붙 ko.wiki..

나의 이야기 2022.10.08

노년일기 134: 할머니 노릇 (2022년 10월 1일)

둘째 수양딸이 지난 오월 둘째 아기를 낳았습니다. 정신없이 구월을 보내다 문득 아기의 백일이 되었겠구나 깨달았습니다. 금반지를 사 보내고 싶어 금은방에 갔습니다. 한 돈짜리는 너무 비쌀 것 같아 반 돈 짜리 값을 물었더니 제 또래거나 저보다 조금 더 나이들었을 주인이 스마트폰으로 시세를 알아보곤 말했습니다. "16만 5천 원. 하나 줘요?" 16만 5천 원은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 "아니오" 하고 금은방을 벗어나는데, 돈이 없으니 사람 노릇도 할 수가 없구나... 슬픔 같은 것이 밀려왔습니다. 금은방에 있던 수많은 금붙이와 보석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주인이 무례한 게 그가 가진 비싼 것들 때문일까 생각하니 더욱 씁쓸했습니다. 금은방에서 조금 떨어진 가게에 가서 두 아기와 부모의 양말을 골랐습니다. ..

나의 이야기 2022.10.01

빈집 (2022년 9월 26일)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을 '빈집'이라 합니다. 미분양 아파트처럼 처음부터 빈집도 있지만 대개는 누군가 살다 떠난 집입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옛집'이 어느 날 '빈집'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빈집을 보면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 집을 옛집이라 부를 사람들, 그 마당을 어슬렁거렸을 강아지와 고양이, 그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웠을 나무들, 그 뜰 가득 향기를 채웠을 꽃들... 포털사이트 '다음'이 10월 1일부터 블로그를 없애고 티스토리로 통합한다는 통보를 들어서일까요? 13년 동안 글을 써온 이 블로그를 드나드는데 빈집을 드나드는 느낌입니다. 아래 그림은 일러스트포잇 김수자 씨가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 '詩詩한 그림일기'에 신동옥 시인의 시 '빈집'과 함께 올린 그림입니다. 아래엔 그림..

나의 이야기 2022.09.26

글 집, 이사를 앞두고 (2022년 9월 21일)

작년 6월, 제가 오래 쓰던 휴대전화 번호가 제 의사와 상관없이 바뀌었습니다. 번호를 011에서 010으로 강제적으로 바꾸고 2G 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때까지, SK 텔레콤은 한참 제게 '회유와 협박' 문자를 보냈습니다. '번호를 어서 바꿔라, 바꾸면 이러저러한 것을 해 주겠다... 바꾸지 않으면 몇 월 몇 일부터 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요즘 저는 그때처럼 일방적인, 비슷한 내용의 이메일을 받고 있습니다. '다음'에 연재하던 제 블로그, 바로 이 블로그를 '티스토리'에 '통합'하지 않으면 블로그가 사라진다는 것이지요. 이 블로그는 2009년 9월 18일에 개설했습니다. 당시 포털사이트 중에서 네이버가 가장 힘이 세어 대기업으로 치면 '삼성' 같은 존재이고, '다음'은 네이버보다 힘이 약하..

나의 이야기 2022.09.21

노년일기 131: 빚 갚기 (2022년 8월 25일)

젊은 시절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얻고 또 돈을 빌려 집을 샀습니다. 그리곤 제법 열심히, 즉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참고 하면서 간신히 은행 빚을 갚았습니다. 다 갚고 보니 저는 젊지 않았습니다. 가끔 거울 속 흰머리를 빗으며 '그래도 빚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갚지 못한 빚이 제 키보다 높이 쌓여 있었습니다. 봄이 끝나갈 땐 봄에 받은 사랑 빚을 갚지 못하고 여름을 맞으니 어쩌나 했는데 서늘한 바람이 아침을 가르니 이 한 해 동안 받은 사랑도 또 갚지 못하겠구나... 절망하게 됩니다. 전에는 '빚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빛이구나'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젠 '아무리 해도 이 生에서 진 빚을 갚지 못하고 가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니 나이와 함께 늘어나는 건 부끄러움뿐입니다. ..

나의 이야기 2022.08.25

노년일기 130: 고무줄 (2022년 8월 19일)

몇 년 전만 해도 반바지를 입고 집을 나서는 건 몹시 쑥스러운 일이었지만, 올여름은 반바지 두 벌로 버텼습니다. 다리 절반이 노출되니 시원한데다 뜨거운 직사광선이 뼈를 튼튼하게 해준다는 말도 들어서입니다. 한 벌은 가족이 입던 것으로 엉덩이 부분이 해어져 꿰매어 입었지만, 헌옷수거함 출신인 다른 한 벌은 출신지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새 것입니다. 삼사 년 묵은 초가지붕 색과 짙은 남색인데, 두 바지 모두 면을 꼬아 만든 띠로 허리둘레를 조정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허리밴드가 신축성이 없다 보니 바지를 입고 벗을 때마다 띠를 묶었다 풀었다 해야 해서 아주 불편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어느 날 띠를 빼내고 고무줄을 넣었더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아, 또 하나 닮고 싶은 존재를 발견했습니다. 고무줄 같은 ..

나의 이야기 2022.08.19

노년일기 129: 요섭의 속눈썹 (2022년 8월 10일)

오른쪽 눈의 속눈썹이 눈꺼풀을 찔러 상처가 났습니다. 나이들며 눈꺼풀이 내려오는데다 더위로 인해 피부가 거의 항상 젖어 있으니 속눈썹처럼 약한 자극에도 상처가 나는 것이겠지요. 쌍꺼풀의 겹진 부분이라 남의 눈엔 잘 보이지 않지만 쓰라립니다. 속눈썹 하면 요섭이 떠오릅니다. 경향신문 정치부 정요섭 기자... 속눈썹이 유난히 길었던 그와 저는 1980년대 중반 외무부(지금의 외교부) 출입기자로 만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전두환 정권에게 언론의 자유를 빼앗긴 불행한 기자들이었고, 저는 당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8층에 있던 외무부 기자실에 출입하던 유일한 여기자였습니다. 요섭과 저는 가끔 8층 창가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찬송가를 읊조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제가 기자실의 큰 테이블에 앉아 뭔..

나의 이야기 2022.08.10

노년일기 128: 포기하겠습니다 (2022년 7월 25일)

오래 전 제게 보약을 지어주시던 선생님은 '나쁜 점은 하루라도 젊을 때 빨리 고쳐야 한다. 나이들면 점점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꼭 나쁜 점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기질은 나이들며 점차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흔 넘은 어머니와 일흔이 가까워지는 딸의 만남이 자꾸 삐그덕거리는 것도 바로 그래서이겠지요. 하루라도 집에 머물면 병이 나신다는 어머니와 달리 저는 가능한 한 집안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을 만나거나 많은 물건이 있는 곳을 매우 싫어하는데 어머니는 사교와 백화점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부르시면 싫다는 말을 못하고 백화점에 동행하곤 했습니다. 다녀와서 앓는 것은 저와 함께 사는 가족들만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아흔이 넘으셨지만 여전히 외출을 좋아하시고 그 외출에..

나의 이야기 2022.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