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반바지를 입고 집을 나서는 건 몹시 쑥스러운
일이었지만, 올여름은 반바지 두 벌로 버텼습니다.
다리 절반이 노출되니 시원한데다 뜨거운 직사광선이
뼈를 튼튼하게 해준다는 말도 들어서입니다.
한 벌은 가족이 입던 것으로 엉덩이 부분이 해어져 꿰매어
입었지만, 헌옷수거함 출신인 다른 한 벌은 출신지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새 것입니다.
삼사 년 묵은 초가지붕 색과 짙은 남색인데, 두 바지 모두
면을 꼬아 만든 띠로 허리둘레를 조정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허리밴드가 신축성이 없다 보니 바지를 입고 벗을 때마다
띠를 묶었다 풀었다 해야 해서 아주 불편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어느 날 띠를 빼내고 고무줄을 넣었더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아, 또 하나 닮고 싶은 존재를 발견했습니다.
고무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싶습니다.
나이들며 겉모습은 낡은 고무줄 꼴이 되어가지만
정신은 새 고무줄처럼 팽팽했으면 좋겠습니다.
고무를 인간의 삶 속으로 들여온 마야인들처럼
사라진 후에도 인류에게 유익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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