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수양딸이 지난 오월 둘째 아기를 낳았습니다.
정신없이 구월을 보내다 문득 아기의 백일이 되었겠구나
깨달았습니다. 금반지를 사 보내고 싶어 금은방에 갔습니다.
한 돈짜리는 너무 비쌀 것 같아 반 돈 짜리 값을 물었더니
제 또래거나 저보다 조금 더 나이들었을 주인이
스마트폰으로 시세를 알아보곤 말했습니다.
"16만 5천 원. 하나 줘요?"
16만 5천 원은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
"아니오" 하고 금은방을 벗어나는데, 돈이 없으니 사람
노릇도 할 수가 없구나... 슬픔 같은 것이 밀려왔습니다.
금은방에 있던 수많은 금붙이와 보석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주인이 무례한 게 그가 가진 비싼 것들 때문일까 생각하니
더욱 씁쓸했습니다.
금은방에서 조금 떨어진 가게에 가서 두 아기와 부모의
양말을 골랐습니다. 시월, 십일월... 추운 날들이 올 테니
발이라도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아기의 앞날을 축원하는 카드에, 아기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담아 우체국 택배로 부쳤습니다.
다음 날 수양딸이, 가족들 외에 아기 백일을 기억한 사람은 저뿐이라는
말과 함께 새 양말을 신은 아기의 사진을 문자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다시 미안한 마음을 전했더니 답장이 왔습니다.
"반지랑 양말이랑 마음에 차이가 없는데 뭘 그렇게 말씀하세요ㅎㅎㅎ
오히려 실용적이고 따뜻한 양말이 훨씬 좋아요! 반지는 꺼내보지도
않잖아요ㅎㅎㅎ"
돈이 없어서 할머니 노릇을 할 수 없다면 저는 앞으로도 계속 할머니
노릇을 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아기를 축원하고 수양딸을 사랑하는 건 돈이 없어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시월, 둘째 수양딸의 위로 덕에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서너 시간 후 햇살 속을 걸어 첫째 수양딸이 선결제해준 카페에 가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면, 아마도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수양엄마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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