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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양심

1월의 마지막 주와 2월 초입에 들려온 슬픈 소식 두 가지. 소식의 주인공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 (Howard Zinn)입니다. '행동하는 양심'을 주창하고 그렇게 불린 분들입니다. 태어나 산 곳도 직업도 달랐지만 지향점은 같았던 두 분입니다. 하워드 진은 1월 27일 타계했고, 2월 2일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김 전 대통령 묘소 부근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두 가지가 다 애석한 일이지만 제겐 화재 사건이 더 큰 슬픔을 일으킵니다. 같은 한국인인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분의 생전과 사후, 그분이 견뎌야 했고 여전히 견디고 있는 폭력적 무례 때문입니다. 현충원 측은 현장에서 삼백 미터 가량 떨어진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과 무명용사 위령탑 부근에서 김 전 대통령을 친공산주의..

나의 이야기 2010.02.08

돌아다보면 문득 (2010년 2월 1일)

오후 2시 반, 지하철 3호선 기차 안입니다. 전등이 켜있어도 어두운 건 승객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합실도 그랬지만 승객은 대부분 50세 이상입니다. 아무리 평균 수명이 늘어났다 해도 50세가 넘은 사람에겐 꿈꿀 미래보다 ‘돌아다볼’ 과거가 길고, 알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지나간 시간이 남긴 피로가 짙습니다. 마침 객차와 객차 사이의 문이 열리며 초로의 남자가 들어옵니다. 문이 닫히기 전에 얼른 그이가 떠나온 칸으로 옮겨 탑니다. 칸은 달라도 풍경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앉아 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 모두 옆 칸 사람들을 옮겨놓은 듯합니다. 나이는 차이를 지우고 같음을 강조하는 유니폼입니다. 객차 양 끝의 ‘노약자 석’은 물론이고 가운데의 긴 의자들도 모두 노인들 차지입니다. 이제는..

자유칼럼 2010.02.01

황금을 찾아서

중국 북부 하라하테 산맥에서 금을 찾던 일곱 사람이 얼어죽었다고 합니다. 이미터 높이의 눈에 갇힌 채 함께 금을 찾아 헤매던 열여섯 명은 구조되었지만 금을 찾겠다는 꿈을 꾸던 일곱 사람은 꿈 속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금을 찾아 부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신장과 티베트 등 산간 오지를 헤매고 있다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기온이 영하 사십오 도 이하로 떨어지지만 금을 향한 열정은 식지 않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접하니 새삼 사람과 황금의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과 황금' 하면 제일 먼저 '황금뇌를 가진 사나이'가 떠오릅니다. '황금뇌를 가진 사나이'는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단편으로, 원래 제목은 '황금뇌'인데 번역과정에서 '황금..

나의 이야기 2010.01.26

최후의 연금술사

왜, 하필 칼리오스트로인가 변변치 않은 집안에 내세울 것 없는 학벌. 거무스레한 얼굴에 땅딸막한 키. 서투른 영어. 21세기 초입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없을 조건을 두루 갖춘 사람. 이 세상을 다녀간 사람의 수는 저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다는데 왜 하필 200년 전 이탈리아의 지하동굴 감옥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칼리오스트로인가? 요한 슈트라우스가 그의 이름을 딴 오페레타를 만들었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오페라 에 그로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에 대한 시를 쓰고 알렉상드르 뒤마가 그에 대한 소설을 썼기 때문에? 카사노바가 질투를 하고 마리 앙투와네트가 증오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그가 프랑스 혁명의 불을 지폈다고 말했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의 번역을 의뢰받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오..

번역서 2010.01.25

인연

오래된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합니다. 모두 전에 다니던 직장의 동료들입니다. 식탁 위를 오가는 얘기는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로 흐릅니다. 과거가 강이라면 현재는 시내입니다. 시냇물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 갈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도 마음 졸이지 않습니다. 모든 물은 바다에서 만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고작 의지를 북돋우지만 과거는 평화를 줍니다. 오늘의 세상은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앞으로'를 외치니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이 적으니 세상이 자꾸 싸움터가 되어 갑니다. 직장이 생활전선이라면 함께 일하는 동료는 전우입니다. 전우끼리 힘을 합해야 버틸 수 있는데, 살아남을 수 있는데, 이 자본과 상대평가의 시대는 전우끼리도 싸워야한다고 가르칩니다. 다..

나의 이야기 2010.01.22

제삿날 (2010년 1월 13일)

오늘은 제삿날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도 신경 쓸 것이 적지 않지만 돌아가신 분을 맞으려면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영하 십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지만 문을 활짝 열어 청소를 하고 여기저기 묵은 때도 벗겨냅니다. 어제 장을 보았지만 오늘 한 번 더 나가야 합니다. 떡을 하지 못했으니 사러 가야 합니다. 나간 김에 두어 가지 더 사와야겠습니다. 여유 있는 살림은 아니지만 저 세상에서 이 세상까지 먼 길 오실 분을 생각하면 한 가지라도 더 장만해 상에 올리고 싶습니다. “제사? 쓸데없는 일이야. 귀신이 있어? 있다 해도, 와서 음식을 먹어? 귀신이 음식을 먹는다면 음식이 그대로 있을 리가 없잖아?” 똑똑한 친구가 힐난조로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제사상에 올려놓은 음식은..

자유칼럼 2010.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