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 12

어제 읽은 시: 실 하나를 따라가는 일 (2024년 6월 30일)

유월의 끝에서 유월의 처음을 돌아봅니다.여전하게, 저의 길을 걸어온 한 달이었습니다. 어머니 이승 떠나시고 백일이 지나니 그때서야활자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읽는 이유는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글의 큰 효용 중 하나는 위로일 겁니다. 여러 문장에서, 특히 시에서위로를 받았습니다. 어제 읽은 시는 고 장영희 교수 (1952-2009)의 책 에 수록된 윌리엄 스태포드 (William Stafford:1914-1993)의 'The Way It Is (삶이란 어떤 거냐하면)'이었습니다. 은 장 교수가 고르고 번역한 시들을 영한 대역으로 출판한 시집입니다.  "There's thread you follow. It goes among things that change. But it doesn't change.Pe..

오늘의 문장 2024.06.30

실험 음악 콘서트 (2024년 6월 28일)

2012년에 출간한 졸저 의 시 중에 '처음으로 (For the First Time)'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제목을 한글과 영어로 쓴 것은이 시집의 시들이 그 두 개의 언어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의 마지막 연은 "늦게라도 보아야 하는 게 있다/늦게라도 해봐야 하는 게 있다"입니다.살아있어 좋은 점은 무엇보다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있다는 것이고, 어제는 바로 그래서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실험 음악 (Experimental Music) 콘서트에 갔습니다. 콘서트의 주인공은 멀리 노르웨이에서 온 두 명의 음악가, 신드러 저르가( SINDRE BJERGA)와호어콘 리에( HÅKON LIE)였습니다. 콘서트 장소가 마침집에서 가까운 홍은동의 복합문화공간 '서재 (Loud Libr..

동행 2024.06.28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들 2 (2024년 6월 26일)

윌리엄 포크너가 유명해지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그의 소설 때문이지만, 그의 소설 (As I Lay Dying)>를 읽다 보면 이 사람은 시인이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와 소설은 길이와 표현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태생 자체가 다릅니다. 시가 태어나려면 먼저 시인이있어야 합니다. 시인은 누구나 보고 느끼는 것을 다른 눈으로보고 느끼는 사람이고, 그가 그 느낌을 글로 적은 것이 시가 되니까요.  소설의 경우엔 이야기가 소설가에 선행합니다.그러니 시인은 태어날 뿐 만들어질 수 없지만, 소설가는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을 읽다가 포크너가 시인임을 깨닫는 건문장에서 배어나오는 '다른' 시각, 즉 감수성 때문입니다. 포크너의 간략한 전기를 찾아봅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의 문학 창작은 소설보다 시가 먼저였습니다...

오늘의 문장 2024.06.26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들1 (2024년 6월 23일)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책꽂이 앞에 서서 다음에읽을 책을 고릅니다. 첫 문단 혹은 첫 쪽을 읽다 보면 저절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을 것인가, 책꽂이에 꽂을 것인가. '시절 인연'이란 불교적 용어는 책과 저의경우에도 적용됩니다. 두어 쪽  읽고 포기하기를 여러 번 했던 책이 어느 날 맛있는 커피처럼저를 붙잡으니까요. 우울할 때 꺼내 읽으며 소리 내어 웃는, 요즘 읽는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 1897-1962)의 죽어갈 때 (As I Lay Dying)>가 그런 책입니다.아래처럼 더위를 잊게 해주는 문장들 덕택입니다. "I can remember how when I was young I believed death to be a phenomenon of the body; n..

오늘의 문장 2024.06.23

노년일기 221: 부모의 잘잘못 (2024년 6월 21일)

누구나 말년은 위험합니다.마지막 몇 해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평생의 잘못이 옅어지기도 하고, 애써 쌓은성취가 무너지기도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우리보다 먼저 말년을 맞는부모는 우리의 스승입니다. 늙은 부모의언행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모두 자기 부모보다 나은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와 사별하며 흘리는 눈물은 부모의 잘못을 지워주는 지우개일지 모릅니다.처음으로 부모 노릇을 하느라 실수하신 거라고.부모 또한 죽음 앞에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처럼한탄했을 거라고. '깊이 사랑했으나 현명하게 사랑하지 못했구나!' 그러니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분들의잘못을 되뇌이며 원망하는 것처럼 어리석은일도 없을 겁니다. 미국 작가 레모니 스니켓 (Lemony Snicket:본명: Daniel Handler: ..

동행 2024.06.21

블로그와 애도 (2024년 6월 19일)

그전에도 이 블로그를 찾는 방문객은기껏해야 하루 수십 명이었습니다.그리고 이제 그 수는 한 자리에 그칠 때가많습니다. 방문객의 감소는 지금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데 혹은 잊히는 데 걸리는 시간을 보여줍니다.  9년 전 아버지 장례를 치를 때 들은장례지도사의 말이 떠오릅니다. "옛날에는 3년상을 치렀지만, 이젠 돌아가신 분을 3년씩 애도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요즘은 보통 3일장을 치르는데, 3일장이끝나면 애도도 끝나요. 3일장이 곧3일상이지요." 9년 전 첫 스승이자 친구인 아버지를 잃고다시 생활로 복귀하는 데 몇 해가 걸렸습니다.여러 사람이 제게 위로하듯 핀잔하듯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아흔에 돌아가셨는데환갑 넘은 딸이 이렇게 오래 슬퍼하다니.' 그새 제 나이는 아홉 살이나 늘었고 어머니는 아흔넷에..

동행 2024.06.19

노년일기 220: 세상에서 제일 고약한 냄새 (2024년 6월 16일)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예능 프로그램에출연한 경찰 출신 범죄학자 김복준 씨를 보았습니다. 1982년에 경찰이 되어 2013년에 명예퇴직할 때까지그는 강력계 형사로 일하며 수많은 범죄를 해결하고범죄자를 검거했습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씨가연기한 박두만 형사의 실제 모델이라고도 하는데,  특히 후각이 예민해 시신의 냄새를 맡고 사망 시점을 유추해 내는 데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세상에서 제일 고약한 냄새가 뭔지 아느냐고묻자, 그와 함께 있던 연예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오래된시신의 냄새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오래 전 어떤집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 집에서 아주 심한 악취가 나자 동료들 모두 사망한 지한참 된 시신의 냄새라고 했다고..

동행 2024.06.16

노년일기 219: 그들을 용서하지 마!(2024년 6월 14일)

저의 하루도 성장의 시간이었던 때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저의 하루는 슬픔과 탄식의 시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제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지난 5월 23일 '얼차려 군기훈련' 중에 쓰러져 이틀 후 숨진 훈련병입니다. 5월 27일 한겨레신문 사설을 보면 훈련병은 얼차려를 시킨지휘관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에 사설 일부를 옮겨둡니다.  "당시 훈련병들은 전날 밤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이튿날 오후 약 20㎏에 이르는 완전군장을 차고 연병장을 구보(달리기)로 도는 군기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통상 ‘얼차려’로 불리는 군기훈련은 지휘관 지적 사항이  있을 때 군기 확립을 위해 장병들에게 지시하는 일종의 벌칙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훈련 대상자의 신체 상태를 고려해 체력을 증진시키거..

동행 2024.06.14

노년일기 218: 친구의 아픔 (2024년 6월 11일)

살아가다 보면 가까운 사람이 아픔을 겪는 걸지켜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쁨을 나누면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지만아픔은 나눌 수가 없습니다. 아픔은 대개 겪는 사람만의 것이니까요. 나눌 수 없는 아픔을 겪는 친구를 위해 우리는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상황이 허락하면 그의곁에서 아픔이 초래하는 불편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 이만치 떨어져 있게 되면 그의 회복과 고통의 최소화를 위해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오늘 아픈 친구와 오늘 아프지 않은나의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인생은생로병사의 과정이라 평생 아프지 않은 사람은없으니까요.  우리가 아플 때 왕왕 저지르는 실수는 아픈 우리를보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편하고 행복하다고 짐작하는 것입니다. ..

동행 2024.06.11

한국일보와 장기영 사주(2024년 6월 9일)

나이 든 사람에게 숫자는 추억으로 가는 문을여는 비밀번호입니다. 그 숫자가 '월, 일'과 합해져특정한 날짜를 만들면 그날엔 꼼짝없이 추억의 포로가 됩니다. 오늘은 6월 9일, 보통 사람에겐 별 의미 없을이날이 제겐 잊지 못할 날입니다. 장기영 사주가한국일보를 창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일보사가 일곱 개의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며한국 언론의 중추적 역할을 하던 1976년 말, 저는 한국일보사가 실시한 33기 견습기자 시험을 치렀습니다. 두 차례의 필기시험과 한 번의 면접시험을 통과한사람들이 견습기자 선발의 마지막 관문인 사주 면접을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중학동 옛 한국일보 건물 10층사주실에서 장기영 사주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상업고교 출신으로 부총리를 역임한 입지전적인물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처음으로..

동행 2024.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