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

최후의 연금술사

divicom 2010. 1. 25. 06:28

왜, 하필 칼리오스트로인가

 

변변치 않은 집안에 내세울 것 없는 학벌. 거무스레한 얼굴에 땅딸막한 키. 서투른 영어. 21세기 초입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없을 조건을 두루 갖춘 사람. 이 세상을 다녀간 사람의 수는 저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다는데 왜 하필 200년 전 이탈리아의 지하동굴 감옥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칼리오스트로인가?

 

요한 슈트라우스가 그의 이름을 딴 오페레타를 만들었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그로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에 대한 시를 쓰고 알렉상드르 뒤마가 그에 대한 소설을 썼기 때문에? 카사노바가 질투를 하고 마리 앙투와네트가 증오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그가 프랑스 혁명의 불을 지폈다고 말했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의 번역을 의뢰받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의문이었다. 수많은 나무들의 몸에 못할 짓을 하면서 책을 낼 때는 무언가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책머리에 등장하는 풍경에선 진한 가난의 냄새가 난다. 시칠리아에서도 제일 못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시장통. 그곳에서도 가장 궁색한 사람들이 부스럼처럼 붙어 사는 지린내와 절망에 절은 골목. 칼리오스트로는 그곳에서 주세페 발사모로 태어나 끝없는 도전으로 가득찬 52년을 살았다. 치료사, 강령술사, 화학자, 회춘전문의, 연금술사 등 여러 개의 이름으로 살면서 언제나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섰고, 18세기 유럽을 다스리던 가톨릭 교회와 권력자들에게 꿋꿋이 맞섰다.

 

바로 그것, 비천에 굴하지 않고 권력에 빌붙지 않으며 거짓 믿음을 받아들여 육신과 영혼의 안락을 도모하지 않은 그의 삶에 그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대개의 인간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종류의 한계를 끝없이 거부한 그의 도전 정신에 그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는 치료사로서 인간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강령술사로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소통을 성사시키려 애썼으며, 화학자이자 회춘전문의로서 인간을 파괴하는 노화에 맞섰고, 연금술사로서 금의 권위에 도전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를 읽어야 할 이유는 그의 죽음에 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4년 4개월 동안이나 지하감옥 독방에서 온갖 고초와 회유를 겪었지만, 그는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보다 300년 앞서 살았던 토마스 모어처럼, 그보다 100년 후에 살았던 로자 룩셈부르그처럼 그 또한 자신의 믿음 속에서 때이른 죽음을 맞았지만, 그 또한 그들처럼 죽음을 통해 불멸을 이루었다.

 

당신이 돈도 권력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아무 희망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의 뒤를 따라가 보라. 당신이 보잘것없는 외모 때문에 마음에 둔 이성에게 다가갈 수 없다면 그의 뒤를 따라가 보라. 유럽의 뭇 남성들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던 미녀 세라피나의 땅딸보 남편을 따라가 보라.

 

칼리오스트로를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우리 속의 위대함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처럼 나쁜 조건의 사람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왜 할 수 없겠는가.

 

 

2003년 12월 김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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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이안 맥칼만이 쓰고 제가 번역한 "최후의 연금술사"에 제가 쓴 역자 서문입니다. 1999년 5월에 미국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으로 취직하여 다니다보니 늘 모국어가 그리웠습니다. 2003년 8월 미국대사관, 즉 영어의 세계를 벗어나 모국어의 세계로 복귀하면서 제 안의 모국어 복원을 위한 노력으로 이 책을 번역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