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중학생의 유서 (2011년 12월 22일)

divicom 2011. 12. 22. 23:15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팥죽을 먹고 돌아와 인터넷 세상에 들어갔다가 끔찍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14세의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친구들의 집단 폭행을 견디다 못해 지난 화요일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스스로 떨어져 숨졌다고 합니다.

 

대구 수성구에 살던 소년은 A4 용지 4장 분량의 긴 유서를 남겼는데, 거기엔 같은 반 아이들 누구누구가 매일 “돈을 뺏고 물로 고문하고, 모욕하고, 폭행하고, 가족을 욕하고, 문제집을 찢거나 가져갔”으며 "전깃줄을 목에 걸어 끌고 다니며 부스러기를 먹게 하고, 담배를 피우게 하고, 칼로 찌르고, 불로 지지려 했다"고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소년은 부부교사의 아들이었고 그 사실을 아는 반 아이들은 매일 그의 집에 찾아와 음식을 먹고 가져갔으며, 유명상표 의류를 사게 한 후에 뺏는가 하면 폭행하고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는 등 괴롭혔다고 합니다. 소년은 이들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몰래 아르바이트까지 했지만 보복이 두려워 부모나 교사,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소년은 유서에 "이 방법이 가장 불효이기도 하지만, 제가 이대로 계속 살아 있으면 더 불효를 끼칠 것 같다.”며 “매일 맞던 것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썼다고 합니다. 자살을 결심하고 결행할 때까지 얼마나 외롭고 괴로웠을까요?

 

부모를 사랑하던 소년이 사랑할 시간을 빼앗겨버린 채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떼었을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평화롭게 사는 삶이 어느새 이렇게 실현하기 어려운 꿈이 된 것일까요? 여든을 넘기신 부모님과 동지 팥죽을 나눠 먹고 온 저의 행운이 너무도 미안하게 느껴집니다.  

 

소년의 자살은 자살이 아닙니다. 자살의 모습을 한 살해입니다. 소년을 죽음에 이르게 한 학생들은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잔인해졌을까요? 그들만을 탓할 수 있을까요? 삶이라는 여행길의 반가운 동행은 될 수 없었다 해도 무심한 방관조차 할 수 없었던 걸까요?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14세 소년들이 이런 악행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