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고대 의대 성추행 피해자 (2011년 12월 24일)

divicom 2011. 12. 24. 12:38

눈이 제법 쌓인 크리스마스이브 아침 인터넷에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성추행 사건 피해자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녀는 어제 처음으로 공개 재판(서울고법 형사8부 심리로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 나와 피고인들을 엄벌에 처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피고인들의 최후진술이 끝난 후 발언 기회를 요청, "재판부가 공정한 판결을 해주리라 믿는다. 더는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게 도와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고통 속에 지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녀는 "(피고인) 배모(25) 씨가 자살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매일 그 생각을 하며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못 자고 있다"고 호소하고, "나는 이 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다. 내가 평생 가져갈 고통과 배 씨 등이 퍼트린 나에 대한 험담과 뒷소문을 생각하면 1년6개월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검찰은 박모(23) 씨와 한모(24) 씨에게 1심 선고 형량과 같은 징역 2년6월과 1년6월을, 배 씨에게는 그보다 늘어난 징역 2년을 각각 구형했는데, 박 씨와 한 씨는 "모든 분께 사죄한다"고 말했고, 배 씨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정말 억울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들 세 명은 지난 5월 동기인 피해자와 함께 경기도 가평으로 여행을 가 그녀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사이 성추행했으며 박 씨와 한 씨는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로 성추행 장면을 촬영한 혐의로 모두 구속 기소됐습니다.

 

이 사건은 ‘성추행 사건’으로 불리다가 ‘성폭행 사건’이 되었다가 다시 ‘성추행 사건’이 되었습니다. 당해본 사람은 누구나 성추행도 성폭행임을 압니다. 모든 성폭행 사건은 피해자에게 평생 잊히지 않는 상처를 남깁니다. ‘지나간 사건이니 그만 잊고 용서하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일 겁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만큼은 아니지만, 의사에게 성추행을 당해본 저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 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다”고는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비록 원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우리 사회의 치부 한 곳을 만천하에 드러내주었습니다.

 

의사는 이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와 무력한 자가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권력자에게 더 큰 벌을 주는 게 '법 앞의 평등'을 구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녀에게 상처를 입힌 젊은이들은 미래의 의사로서 주변의 인정을 받았던 '예비 권력자들'이었습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성추행범보다 그들이 더 큰 벌을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동급생들에게 피해를 입은 그녀가 자신의 고통을 만천하에 드러낸 덕에 환자에게 성추행하는 의사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고, 앞으로 그녀와 같은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더욱 용기 있게 범행을 고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녀는 "이 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고통을 통해 무수한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를 얻었습니다.

 

지난 여름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그녀는 지금 크리스마스 기분을 만끽하는 보통 젊은이들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에게 조금 다른 젊은이가 되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이 모든 일을 통해 자신을 강화시켜 이 나라에서 제일 실력 있고 환자의 입장을 헤아리는 의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편임을 잊지 말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에 평화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년 2월3일 열리는 이 사건 선고공판에서 가해자들에게 엄벌이 내려져 그녀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