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지상의 심장 (2011년 9월 1일)

divicom 2011. 9. 1. 08:02

아름다운 젊은이 두 사람으로부터 아름다운 시집과 음반을 선물 받으니 오래 전 옆집에 사시던 이근삼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극작가로도 유명하셨던 선생님이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로 계실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 댁엔 늘 제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는데, '예전엔 술을 들고 오던 놈들이 이제 내가 늙었다고 홍삼이니 뭐니 몸에 좋다는 것만 들고 온다'며 불만을 토로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게 직접 하신 것은 아니고 조선일보에 글로 쓰셨기에 다음 날 술 한 병을 가져다 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아직 당시 선생님 연세만큼 되지 않았지만 '실용적' 쓰임이 없는 선물을 받기는 꽤 오랜만입니다. 시집을 읽고 음악을 들으니 선생님의 행복한 불평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이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8년이 되어갑니다. 선생님의 호탕한 웃음소리, 불콰한 안색을 어제 듣고 뵌 듯 한데...  음악을 블로그에 올리는 법을 모르니 시집에서 시 한 편 골라 봅니다.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블로크 시선>입니다.

 

 

 

지상의 심장이 다시 식는다

 

지상의 심장이 다시 식는다.

심장으로 한기를 맞이한다.

인적 없는 곳에서 사람들을 향한

나누어 가지지 못한 내 사랑을 간직한다.

 

사랑하기에 분노가 무르익는다.

경멸이, 남자들과 여자들의 시선 속에서

망각의 소인을, 아니면 선택의 소인을

읽고 싶은 욕구가 자라난다.

 

외쳐오는 소리. 시인이여, 잊어라!

쾌적한 안락으로 돌아오라!

아니! 차라리 지독한 혹한 속에 스러지리!

안락은 없다. 평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