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백화점 (2011년 8월 29일)

divicom 2011. 8. 29. 07:42

끝없이 날아드는 우편물 중에 백화점 광고지들이 있습니다. 거의 가지 않는 저에게 이렇게 열심히 보낼 때 열심히 드나드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판촉을 할지, 광고에 기울이는 이 모든 노력과 비용 때문에 백화점 물건값은 또 얼마나 비싸질지... 장부를 보지 않아도 훤히 보입니다.

 

백화점은 '자본주의의 꽃'이라지요.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사람(人)이 아닌 '자(資)'를 '본(本)'으로 삼는 생각이니 저와는 맞지 않습니다. 당연히 백화점도 저와는 맞지 않습니다. 백화점은 은행처럼 돈 많은 사람을 대우하는 곳입니다. 아무리 인격이 훌륭해도 돈을 많이 쓰지 않는 사람은 백화점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가 백화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피곤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이상한 건 그런 백화점이 늘 붐빈다는 겁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든 아니든, 늙은 사람이든 젊은이든 백화점엔 늘 사람이 많습니다. 요즘은 대학생들까지 백화점으로 몰립니다. '대학(大學)' 즉 '크게 배워야 할' 때 도서관이나 서점 대신 '백 가지 잡화가 있는 곳'으로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정일이 1991년에 펴낸 시집 <지하인간>엔 "백화점을 다스리는 자가 필시/국방을 다스리게 되리라"는 빛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가 이런 통찰력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마도 그가 받은 공교육이 중학에서 끝나 대학 따윈 다니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그가 표제시 '지하인간'에서 보여주는 '의지의 낙관' 혹은 '의지의 다짐'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지금 '대학'이라는 곳을 다니는 젊은이들이 그의 패기를 배웠으면, 그리하여 백화점은 그만 드나들고 차라리 저 무수한 길들을 떠돌았으면 좋겠습니다.

 

 

지하인간

 

내 이름은 수물두 살

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

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먹으리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