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도 여느 날처럼 보냈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의 지혜와 용기를 염원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 무사히 보낸 하루에 감사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며칠 후 뒷산을 오르다 기슭에 앉은 백련사에 들렀습니다.
이쪽저쪽 높이가 다른 마당 위, 같은 높이의 허공에 연등이
빼곡하고 연등마다 이름 붙은 꼬리가 펄럭였습니다. 연등
지붕 아래 서 있으니 연등에 담긴 기도와 그 기도를 낳은
사랑이 눈을 젖게 했습니다.
백련사의 연등들은 언젠가 보았던 조계사의 연등들보다 덜
화려해 보였습니다. 조계사 연등들은 주로 원색이었던 것
같은데, 백련사 연등중엔 하얀 등이 꽤 많았습니다. 하긴
백련사라는 이름에 흰 연꽃이 들어가 있으니 흰 연등이
있는 게 당연하겠지요.
어디선가 '나무아미타불'을 외는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숲에 한참 들어앉아 있을 때처럼 완전한 정적과 평화가 몸과
마음을 채웠습니다.
오랜만의 텅 빈 충만에 마음은 가벼운데, 백련사에 갔던 날중에
제 나이가 가장 많은 날이어서 그랬을까요? 절에서 내려가는
길이 어느 때보다 가파르게 느껴졌습니다. 주춤주춤 내려가며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으면 넘어지지
않아, 우아하게 내려가자!
자연스럽게 죽음이 떠올랐습니다. 가파른 길을 내려가듯
천천히 내 속도로 늙다 보면, 넘어져서 병원 신세 지는 일을
피하며 살던 대로 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니 낮에 연등 지붕 아래서 느꼈던 텅 빈 충만에
아침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본자심청정 금생도극락 (本自心淸淨
今生到極樂)'. 마음은 본래 맑고 깨끗하니 지금 사는 세상에서
극락에 이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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