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국 씨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를 겁니다.
자신이 속한 정치그룹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며 '사과'하긴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엔 '내가 위법을 한 것도 아닌데 왜들 이러지?' 하는 의문이 있을 겁니다.
조국 씨의 주변엔 그 사람 같은 사람들만이 있고 그들은 모두 조국 씨처럼
인맥과 학맥, 지맥 들을 이용해 기득권을 공고히 하며 살고 있을 테니까요.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금력을 비롯한 여러 가지 힘을 동원해
자신을 소위 엘리트그룹의 일원으로 만들었듯 그 사람도
조국 씨처럼 자기 자식들을 자기처럼 만들었습니다.
그 또한 조국 씨처럼 법을 '위반'하진 않고 법을 '이용'합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실력으로 소위 명문 대학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외국에 보내어 '재외국민'을 만든 다음 다시 귀국시켜 재외국민 특혜로
원하던 서울의 대학에 입학시키는 식이지요.
그렇게 '상류사회'의 일원이 된 자녀들은 그들과 비슷하게 살아온 사람들과
결혼해서 부모들처럼 살아갑니다.
조국 씨와 내가 아는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교수라는 겁니다.
이러니 젊은이들이 학교 교수에 대해 얘기하며 '교수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걸 들으면
픽! 웃음이 나오는 것이지요. 물론 교수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알아채지 못하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못 본 척하는,
영원히 스승이 될 수 없는 교수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조국 씨나 제가 아는 사람과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며 그들은 하나의 계급을 탄생시켰습니다.
학교를 오래 다닌 덕에 주워 들은 것은 많아서 말은 잘하지만
실제 삶은 자신이 하는 말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경향신문의 김민아 선임기자의 생각이 제 생각과 다르지 않아 이래에 옮겨둡니다.
[김민아 칼럼]조국, ‘계급’이라는 판도라 상자 열다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노래를 잘 못한다. 그럼에도 고교 시절 음악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피아노를 전공하던 언니 덕이다. 가창 시험 전날이면 ‘원포인트 레슨’을 받았다. 집에는 클래식 음반이 많았다. 고전음악 감상 시험도 무난히 치를 수 있었다. 서울 강북의 일반고에 다니던 내게도 문화자본은 작동했다. 운이 좋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딸 문제에 대해 뒤늦게 사과했다.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과 청년들에게 상처를 줬다”고 밝혔다. 조 후보자의 최대 과오는 딸의 ‘드문 행운’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데 있다. 조 후보자의 딸은 한영외국어고 재학 중 단국대 의대에서 2주가량 인턴을 한 뒤 소아병리학 관련 영어 논문의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책임저자인 단국대 장모 교수는 한영외고 학부모였다. 조 후보자 딸은 이후 고려대 생명과학대학에 합격했다. 당시 자기소개서에 ‘인턴십 성과로 이름이 논문에 올랐다’는 사실을 밝혔다.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진학 후엔 유급하는 등 성적이 저조했음에도 지도교수로부터 6학기 연속 ‘면학 장학금’을 받았다. 조 후보자는 당초 이 모든 과정을 딸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로 여겼다.
조 후보자와 시민의 시선은 엇갈렸다. 그는 모든 과정이 합법·적법임을 강조했다. 현 단계에서 조 후보자가 불법적으로 개입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건 사실이다. 시민은 그러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그 과정이 합법적일 수 있다는 데 더 좌절했다. 과거 부와 명예, 권력의 대물림이 불법적 통로를 거쳐 이뤄졌다면, 그래서 사후에라도 제재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자본·지위·네트워크 등 ‘합법적 역량과 자원’을 총동원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박탈감이 깊어졌다. ‘조국 구하기’에 나선 일부 여권 인사들은 기름을 부었다. 대중, 특히 청년층 분노의 근원을 들여다보기는커녕 궤변을 늘어놨다. 논문 제1저자 등재를 두고 “보편적 기회”(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현장실습 하고 ‘에세이’를 쓴 게 뭐가 문제냐”(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고 했다.
높은 담장 안쪽에 ‘그들만의 성채’가 솟아 있음을 짐작 못한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실체를 목격한 이는 많지 않았다. 조 후보자로 인해 다수 시민이 담장 안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영화 <기생충>은 ‘냄새’를 통해 계급 문제를 은유했다. ‘조국 사태’는 은유를 넘어섰다. 조 후보자는 ‘계급’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활짝 열어젖혔다.
조 후보자의 장관 임명 여부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주권자의 여론을 반영해 결정될 일이다. 나는 그의 거취보다 한국 사회에 계급문제를 직시할 용기가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김해영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공개한 한국장학재단의 대학생 소득분위 분석자료(2018년 1학기)를 보자. 재단은 신청자를 대상으로 부모의 수입과 재산을 월소득으로 환산해 국가장학금을 지급한다. 이른바 SKY대(서울·고려·연세대) 신청자를 대상으로 소득분위를 나눴더니 장학금을 못 받는 최상위층(9·10분위)이 절반에 육박하는 46%에 달했다. 9분위의 월소득 인정액 하한선은 약 904만원, 10분위는 약 1356만원이다. 연소득으로 환산하면 1억원 이상이다. 반면 3개 대학을 제외한 다른 대학 재학생 중 9·10분위 비율은 25%에 그쳤다. SKY대학의 고소득층 비율이 다른 대학의 2배 가까이 되는 셈이다. SKY대와 비SKY대 학생 간 격차가 이 정도라면, 대학생과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년들의 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누군가 특정 사회계층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갖가지 혜택을 누릴 때, 더 많은 누군가는 그런 혜택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로버트 D 퍼트넘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계급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진 현실을 다룬 <우리 아이들>에서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아이들 또한, 부자 아이들만큼이나 신이 그들에게 부여한 재능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한다. 외고·국제고·자사고 체제를 뜯어고치고, 일반고에 대한 획기적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학입시에서 지역균형선발·기회균형선발을 확대하고,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더 많은 장학금을 줘야 한다. 국공립대 공동학위제와 공영형 사립대 도입을 추진하고, 출신학교 차별금지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집권세력은 계급적 박탈감이 사안의 본질임을 인정하는가? 격차를 완화하려는 구체적 실천을 할 각오가 돼 있는가? ‘조국 사태’가 특정 부처 장관의 임명 문제를 넘어, 시민의 삶을 좌우할 핵심적 질문의 계기로 작용하길 바란다. 다시 말하건대, 문제는 계급이다. 해답은 정치적 상상력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262037015&code=990100#csidx432e807b602598cb6c0cbe03865f7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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