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오랜만에 한강을 건넜습니다. 논현1문화센터에서 열린
영리더스아카데미(YLA: Young Leaders Academy) 커멘스먼트에 참석했습니다.
YLA는 사단법인 아름다운서당이 운영하는 대학생 교육프로그램입니다.
어제 커멘스먼트(commencement)에서는 YLA 14기가 졸업하고 15기가 입학했습니다.
어제 행사를 졸업식이나 입학식으로 부르지 않고 졸업과 시작을 모두 뜻하는
커멘스먼트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일년 동안 100권의 인문학 고전과 경영학 고전을 읽고 실습하고
소정의 봉사활동까지 해야 하니 YLA를 수료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수업이 토요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루어지니
소위 대학 시절의 낭만을 누릴 주말의 절반도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도 YLA엔 중도 탈락하는 학생보다 수료하는 학생이 많으니
이 젊은이들이 얼마나 미쁜지 모릅니다.
이 젊은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며 스스로 자랄 수 있게
도와주신 교수님들과, 이 모든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시는 여러 후원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커멘스먼트를 시작하기 전엔 언제나 존경받는 사회적 인사를 모셔다가
특강을 듣습니다. 어제의 연사는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원장이신 인요한(John Linton) 박사였습니다. 그의 가문은 4대에 걸쳐
미국과 남북한을 잇느라 애쓰고 있는데, 인 교수는 자신이 주민등록증을 가진
한국인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는 전라도 순천에서 태어나 연세대 의대를 다니고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인 원장은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의 장점과 단점을 얘기하며
장점은 키우고 단점은 고치자고 했는데,
단점 중 첫째는 한국인 스스로에 대한 과소평가라고 했습니다.
인 원장은 '과소평가'라 했지만 저는 '사대주의'로 들었습니다.
장점 중에서는 한국인의 '정'과 '체면'에 대한 얘기가 특히 좋았습니다.
인 원장은 자신이 본래 대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은 하지 않는데
아름다운서당 서재경 이사장과의 '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어제 강연을
하게 됐다며 정이 왜 나쁘냐고 반문했습니다. 대학생들 대상의 강연을 하지 않는 이유는
대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보느라 강연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강연을 끝내고 나가시며, YLA 학생들을 만나보니
대학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고쳐야겠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뿌듯합니다.
저는 '정'보다 '체면'이 반가웠습니다.
정은 인 원장과 서 이사장의 관계에서처럼 긍정적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한국의 부패지수를 높이는 데도 기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체면'의 실종을 아쉬워하는 건 체면이 동반하는 '차마' 때문입니다.
체면이 살아 있으면 체면 때문에 나쁜 짓을 하고 싶어도 차마 못하고
체면 때문에 썩 내키지 않아도 좋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체면은 위선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무례나 야만, 천박보다는 위선이 나을 때가 흔합니다.
인요한 원장 특강 후에 커멘스먼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하필 그 첫머리에 제가 몇 마디 해야 했습니다.
할 얘기를 미리 대충 정리해 두었지만 시간관계상 다 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래에 그 내용을 옮겨둡니다. 이 중에는 어제 했던 얘기도 있고
하지 못한 얘기도 있습니다.
어제의 모임에서 밀린 선물을 받듯 오래 못 본 반가운 얼굴들을 여럿 보았는데,
그 중에는 탐라YLA 1기를 수료하고 다시 YLA심화과정(ALA: Advanced Leaders Academy)에 들어온
김효연 씨와, 이번에 울산반 YLA를 수료한 이상원 씨도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친구들을 축원하며 지켜보겠습니다.
Talking Points:
이사장님은 영어로 얘기하라고 하셨지만 한국인끼리 영어로 얘기하는 건 쑥스러우니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오늘의 세계는 ‘divide(격차)’의 시대입니다. ‘digital divide’와 ‘English divide’의 세계.
‘Digital divide(정보 격차)’는 ‘디지털 기기 사용 능력에 따라 생기는 경제·사회적 격차, ‘English divide’는 영어
능력의 차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격차를 뜻합니다. 이사장님은 ‘English divide’의 세계에서, 지식과 정보, 소통의
수단으로서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게 영어로 얘기하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영어 얘기는 이쯤 하고 이제부터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겠습니다.
첫째, Say ‘No’ to your mom. 어머니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라. 제 이십대 친구 하나가 지금 헝가리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거기 스무 살에서 스물세 살 쯤 된 한국 학생들이 어머니와 와 있답니다. 어머니들이 요리, 청소, 빨래 등 온갖 뒷바라지를 한다니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겠지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대개 자녀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법이 꼭 옳은 건 아닙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에서 오셀로는 자신을 ‘열심히 사랑했지만 현명하게 사랑하지 못한 자’라고 묘사합니다. 부모님이 여러분을 아무리 사랑해도 그분들이 살아온 세상과 여러분이 살아갈 세상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데 아무도 미래를 미리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산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여러분이 자기 길을 찾도록 힘을 길러주는 것이지, 이 길이 옳으니 이 길로 가라고 길을 정해주는 게 아닙니다. 아름다운서당도 여러분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도록 돕는 곳입니다.
늘 엄마와, 엄마 돈에 기대어 살다보면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 것이 아니고 엄마 것이 됩니다. 게다가 영원히 사는 엄마는 없으니까 언젠가는 엄마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엄마가 모든 걸 해준다고 좋아하지 말고, 지금부터 엄마 없이 사는 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가끔 ‘너, 내 말 안 듣고 까불다 무슨 일 나도 난 몰라’하며 협박하는
엄마도 있는데, 엄마가 하라는 대로 안 해서 고생 좀 해도 괜찮습니다. 고생을 이기고 꿈을 이룬 사람만이 멋진
스토리의 주인공이 됩니다. 스토리가 없는 사람은 매력도 없습니다. BTS가 세계적인 밴드가 된 것도 스토리
덕분입니다.
누구나 나와 내 자식, 내 애인을 사랑하지만 그런 사랑은 개도 하고 소도 하니, 우리는 좀 다른 사랑, 더 큰사랑을 해야 합니다. 동물과 사람을 구분하는 가장 분명한 잣대는 이타심입니다. 이타심.. 나, 내 집, 내 밥그릇만 생각하지 않고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도 관심을 갖는 겁니다. 고층아파트만 볼게 아니라 그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도 보고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과 그들의 삶을 함께 개선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 생각하는 게 사랑입니다. 우리 옛말 ‘’은 생각을 뜻했습니다. 우리가 자란다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난다는 겁니다. 영리더스아카데미 과정에 봉사활동이 들어 있고, 15기부터 장충반을 인문/사회반으로 만들어 사회문제, 국가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유도,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사람의 수를 늘려 더 큰 사랑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서당에서 지내는 일 년 동안 올바른 사랑법, 큰사랑법을 배우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죽지 말라’입니다. “Don’t die until you are dead.”
외로워서, 돈이 없어서, 실연을 당해서, 꼭 붙어야 할 시험에서 떨어져서. 살아봤자 죽을 거니까,.. 자살의 이유는
많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일 년에 만 삼천 명,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합니다. 저도 십대 끝에서 죽으려고 한강에
간 적이 있고 그 후에도 여러 번 죽고 싶었습니다. 힘들게 살다가 추하게 늙어서 죽을 건데... 왜 굳이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과 마주쳤습니다. 도대체 인생이 뭘까? 삶은 뭐고 죽음은 뭘까?
나는 삶을 버릴 만큼 삶에 대해 알고 있을까? 서둘러 죽음에게로 갈 만큼 죽음에 대해 알고 있을까?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가능한 한 그 답을 찾고 나서 죽자...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을 때는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삶을 끝낼 만큼 삶에 대해 알고 있는가?’ 살아가는 거... 쉽진 않지만 꽤 재미있습니다. 살아 있으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도 해볼 수 있습니다.
‘divide’라는 말로 오늘 얘기를 시작했는데 아름다운서당은 'divide'가 없는 곳입니다. 성별, 고향, 학교, 나이, 부모... 이런 것으로 인한 어떤 격차도 없습니다. 아서당 문을 들어서면 다 같은 아서당 사람입니다. 자신을 키우려는
학생들과 그 학생들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교수님들만이 있습니다.
오늘 아서당을 나서는 14기 수료생들. 일 년 전보다 큰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오늘 새로 아서당의 가족이 된 15기, 일 년 동안 열심히 자신을 키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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