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황교익 "분별 없는 음식은 미개하다"(2016년 5월 5일)

divicom 2016. 5. 5. 09:01

오늘은 어린이날, 얼마나 많은 가정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외식을 하러 나갈까요? 설탕이 듬뿍 든 갈비와 

불고기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놀이동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부모들이 아이와 무엇을 먹을까 정하기 전에 아래 기사를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오늘 한국사회에 이런 분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별 없는 음식은 미개하다'는 황교익 씨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음식에서 정치를 보는 그의 눈, 이런 눈이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황교익 씨의 발언 중에서도 맨 마지막 말이 참 좋습니다. "나를 어떻게 쓰면 사회적으로 훨씬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궁리 중이다."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람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사회는 진보할 겁니다. 지금 한국사회 같지 않을 겁니다.


시사인라이브에 실린 기사, 너무 길어서 조금 줄여 옮겨둡니다. 말없음표는 문장이 사라졌음을 뜻합니다.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소제목은 인터뷰를 한 임지영 기자의 말을 요약한 것인 듯합니다. 기사 원문과 관련 사진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media.daum.net/culture/all/newsview?newsid=20160505080305102


황교익 "분별없는 음식은 미개하다"

시사INLive | 임지영 기자 | 입력 2016.05.05. 08:03
...

직장 생활할 때부터 문제가 보였다. <전원생활>이라는 잡지의 데스크 노릇을 할 때였다. 기자들이 받아온 요리 전문가들의 레시피를 보면 ‘갖은 양념을 한다’고 되어 있었다. 풀어오라고 했다. 재료에 맞는 양념이 있을 텐데 모든 것에 간장·고춧가루·참기름은 아니지 않나 싶었다. 갖은 양념으로 대충 버무려서 먹는 음식에는 분별이 없다. 분별이 없으면 미개하다. 문명은 얼마만큼 섬세하게 나누는가에 따라 선진과 미개로 구분된다. 우리 음식에 대해 미개하다고 말하면 민족감정을 건드리는 거라 잘 얘기하지 않지만 양념법에 문제가 있다는 건 요리사 대부분이 알 거다.

그런 생각은 못 해봤다.

큰일 날 일도 아니고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음식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있는 현상이다. 분별없음이 모든 일상에서 보인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내 기준이 없으니까 정치적 성향을 모르고 정당 고를 때도 오락가락한다. 평소 급진적인 이야기를 하고 술 마시며 재벌 욕하지만 투표할 때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처럼.

우중론처럼 들린다.

솔직해져야 한다. 우린 스스로 근대국가, 시민국가를 만들지 못했다. 우리보다 앞서 근대 시민국가를 만들었던 나라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산업화 이후, 한국 음식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외국의 경우 농업사회의 음식과 산업사회의 음식은 다르다. 한국은 1960년대만 해도 농업사회였는데 순식간에 산업사회로 바뀌었다. 여성 노동도 당연해졌다. 그런데도 예전 조리법으로 요리해야 건강하다고 말한다. 집밥 열풍도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바른 전략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옛날 방식으로 먹자는 건데 밥·반찬·국 등 끼니 하나 차리려면 두 시간 걸린다. 그런 와중에 백종원씨가 등장해 초간단 레시피를 보여주었다. 그가 가진 미덕의 한 부분은 간단하다는 거다. 양념 중심으로. 어떤 재료든지 똑같은 맛을 내는 레시피를 보여준다. 한계가 있다.

설탕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 음식이 많이 달아졌다고 했는데 언제부터 느꼈나?

언제부턴지 외국 생활하다 들어온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한국 음식이 다 달다고 했다. 늘 먹다 보면 깨닫지 못하게 된다. 나도 외국은 짜게 먹으니까 달게 느껴질 수 있겠지, 정도의 의심만 했다. 자세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7년 전쯤이다. 어떤 방송에서 음식점 음식을 맛보고 비평하자고 제안해 일산의 한 나물집에 갔다. 평소엔 대강 먹지만 비평하는 거라 맛에 집중했다. 시금치·고사리·취나물이 놓여 있는데 달더라. MSG 안 넣는 곳으로 알려졌는데 설탕을 쓴 거다. 나물 무칠 때 설탕 넣는 건 듣도 보도 못한 거고 관습에서 벗어난 거라 0점을 줬다. 이후로 이 집 저 집 나물을 먹어보니 다 달아져 있었다. 쓴맛의 나물도 있는데 그걸 지우는 게 간장·된장·고추장이다. 그거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MSG를 넣기도 하고. 그러고 나서 보니까 온통 음식이 단 거다. 한국 음식 어디에나 설탕이 들어가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조리법 책에도 빠짐없이 설탕이 등장한다. 왜 그럴까 생각하는 중이다. 단지 인간의 혀가 단맛을 좋아하니까, 설탕이 싸게 공급되니까 변한 거다, 이런 식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나라도 단 음식 먹는데 주식까지 달게 먹지는 않는다. 케이크, 아이스크림 같은 음식만 달게 먹는다.

이유가 뭘까?

들여다보니 매운 음식도 눈에 들어왔다. 매운 음식이 크게 번져나가기 시작한 게 1960~70년대다. 전후 스트레스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쓴 소주에 매운 음식 먹으며 내 몸을 아프게 해서라도 쾌감을 얻으려고 했던 게 작동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 가지 이유로는 한국 음식이 전반적으로 달아진 걸 해명하지 못한다. 음식이 문화인 이유는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의 영향이라는 지적도 했던 것 같다.

방송의 영향이 아니라 방송이 극단으로 간 거다. 백종원씨 방송을 캡처해놓은 걸 봤는데 설탕 퍼붓는 장면들이 나오더라. '괜찮아유~' '설탕 넣으면 맛있어유' 이런 데 방점이 있었다. 단 음식을 많이 먹기 시작한 게 1980년대 후반인데 앞서 20년간 많이 먹게 만든 전반 작업이 있었다. 집집마다 사카린을 두고 먹다가 몸에 안 좋다는 인식이 퍼져 설탕으로 대체했다. 그러면서 단 음식에 대한 집중이 생겼다. 1980~90년대생들은 분유 세대다. 모유 수유율이 낮았다. 분유와 두유의 단맛에 길들여진 거다(설탕수저 세대). 이들부터 본격적으로 소아비만이니 당뇨병이니 하는 건강에 대한 염려를 많이 들었다. 이미 단 음식에 적응해 몸은 계속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주변에선 먹지 말라고 한다. 방송·신문 등에서도 전방위로 잔소리를 했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그때 백종원씨가 '괜찮아유' 이러면서 해방감을 주었다. 이들에겐 구세주인 거다. 지명도 있는 인사가 설탕을 두고 괜찮다고 하니까.

백씨 스스로는 방송에서 설탕량이 과장됐다고 설명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지적하는 건 양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음식에 넣는다는 점이다. 그도 잘 알 거다. 나쁜 건 백종원씨가 아니다. 그는 사업가고, 음식 팔 때 설탕을 얼마나 넣든 제약은 없다. 소비자가 알아서 판단하는 거다. 방송이 문제다. 백씨가 그렇게 하는 걸 여과 없이 보여준다. 괜찮다고 하는 걸 정답처럼 보여주는 거다.

...

설탕뿐만 아니라 쇠고기 등급제, 한식의 세계화 등에 대해 남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음식은 문화라고 했다. 먹고 있는 것에 대해 들여다보면 정치·문화 전반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 관찰하면 한국 사회에 허구들, 거짓들이 너무 팽배해 있는 게 보인다. 그냥 두면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러니 지적할밖에.

지난해에는 천일염의 위생 문제를 파고들었다.

천일염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국가와 생산자, 학계, 언론이 공동으로 사기를 친 행위다. 2010년 <미각의 제국>을 낼 때만 해도 몰랐다. 소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염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게 아니네…’ 싶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를 속였다는 데 어마어마하게 화가 났다. 명색이 맛 칼럼니스트이고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대중을 향해 글 쓰는 저널리스트인데, 나까지 속은 거다. 내 글을 읽는 사람도 속이는 행위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는 걸 보면 어떤가?

다행이지 싶다. 전에도 관료·교수·언론은 알고 있었다. 천일염 다큐를 찍은 PD를 술자리에서 만났는데 그때 찍으면서 알았다고 했다. 장화 신고 들어가 긁는데 먹어야 하나 싶었다고. 식품회사 연구원들도 위생과 질 문제를 알지만 소비자들이 좋아하니까 썼다. 정확한 정보를 아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라고 하면 안 한다. 내가 떠들고 난 다음에야 말이 나왔다. 기다렸던 거다. 알고도 거짓말한 사람만큼 나쁜 게 알고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비겁한지 나도 겪으며 놀랐다.

...

말투는 온화한데 내용이 격정적이다. 꾸짖는 말투가 불편하기도 하다.

인문학의 처음을 소크라테스로 본다. 대단한 무엇을 설파한 건 아니고 방법이 포인트다. 모르고 있다는 걸 끝없이 깨닫게 해주는 방식이다. 그게 인문학의 전통이다. 편안하게 괜찮다고 하는 건 종교다.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강력한 단어로 뒤집어줘야 한다. 저널리스트로서 짧은 몇 마디 말로, 생각지 못했던 걸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다.

맛 칼럼니스트로서 정치도 강조한다.

우리 밥상에 올라가는 음식이 이 모양 이 꼴인 이유가 정치 때문이다. 단순하다. 정치가 바뀌어야 식탁이 바뀐다.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려면 음식에 대한 비용을 늘려야 한다. 다른 데 쓸 돈을 줄여야 하는데 사교육비·의료비·노후자금까지 쓸 곳이 너무 많다.

<농민신문> 기자 생활을 12년 했다. 그만둔 계기가 있다면.

마흔에 그만두었는데 모두 말렸다. <갈매기의 꿈>을 쓴 작가(리처드 바크)가 이끼에 대한 우화를 남겼는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물속 이끼들이 바위에 붙어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날 올려다보니 이끼 하나가 둥둥 떠가는 거다. 부러워서 어떻게 하면 올라갈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손만 놔' 그러더라는 거다. 현실에 집착하고 있으면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물 위로 떠다니는 이끼도 급류에 휘말리다 우여곡절 끝에 위로 뜬 거다. 내가 읽은 최후의 처세술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결심에 영향을 주었다.

영향력이 커졌다. 고민의 지점도 달라질 것 같다.

지명도를 많이 확보한 상태다. 이걸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여러 고민이 있다. 글쟁이로서만이 아니라 위치가 좀 바뀌었다. 1년 만의 일이다. 나를 어떻게 쓰면 사회적으로 훨씬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궁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