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사법시험과 로스쿨 (2015년 9월 12일)

divicom 2015. 9. 12. 12:09

조금 전 경향신문 인터넷판에서 사법시험과 로스쿨에 대한 찬반양론을 정리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민주주의 사회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받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이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일이 많고, 그러다보니 '유전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이 정설처럼 떠돌게 되었습니다. 돈이 있으면 죄를 짓고도 응분의 벌을 받지 않는데, 돈이 없으면 죄가 없어도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요.


'개천에서 용'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2017년 사라지기로 예정된 사법시험을 존속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요즘 사회 상황에서는 로스쿨이 사법시험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데 기여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지요. 


지난 8월 29일자 머니투데이에도 관련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기사에서 김태형 이코노미스트는 "과연 사시가 로스쿨에 비해 가난한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신분상승의 기회가 높거나 비용이 적게 드는 시험일까?"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로스쿨과 사시의 비용을 비교했습니다.


로스쿨의 경우 1년에 국공립대학 등록금이 약 1000만 원, 사립대학은 약 2000만 원으로 3년간 약 3000~6000만 원 정도 이고, 책값과 생활비가 추가되는데 경제사정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5%이상 특별전형과, 사립대의 경우 성적우수 장학금과 일반 장학금이 있어, 로스쿨 학생들은 보통 20%에서 많게는 100%의 장학금을 받고 있다는 게 김태형 이코노미스트의 주장입니다. 로스쿨의 합격률은, 2015년에 발표한 4회 변호사시험에서 졸업생 2000명, 응시자 2561명 기준으로 1565명이 합격해 입학정원 대비 78.25%, 응시자대비 61.1%가 합격했으며, 취업 후 6개월의 연수기간이 지나면 단독수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시의 경우에는, 1000명까지 합격자수를 늘려오다가 2009년 로스쿨 제도 시행 후 차차 줄어들어 2014년에는 1차 4696명 중에서 471명(10%)이, 2차는 1002명 중 203명(20%)이 합격했다고 합니다. 김태형 이코노미스트는 2012년 법률저널의 설문 조사 자료를 인용해, 사시 합격자의 평균 수험기간은 4년9개월, 포기한 수험생 숫자까지 포함하면 전체적으로는 더 많은 시간이 사시준비에 소요되며, 사시 합격후 변호사가 되기 전까지 사법연수원에서 거쳐야 하는 연수기간은 2년이라고 합니다. 


경향신문 기사와 머니투데이 기사를 읽어보니, 몇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사법시험의 장점은 고등학교만 나온 사람도 응시할 수 있다는 것이니 사법시험은 고교졸업자를 위해서만 남겨두고, 비싼 등록금 때문에 로스쿨에 진학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장학금 수여 비율을 크게 늘리면 어떨까요?

아래에 경향신문에서 정리한 '사법시험 존폐 논란 10문 10답'을 다소 줄여 옮겨둡니다. 기사 전문은 아래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9112133485&code=210100)


 

1.사법시험 존폐 논쟁 왜 갑자기 불거졌나?

 

논쟁이 최근 불거진 이유는 시기이슈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법에서 정한 사법시험 폐지 시한이 다가오면서 시험을 없애면 안된다는 수험생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는데요, 여기에 일부 국회의원들의 자녀가 로스쿨 졸업 뒤 특혜를 받아 취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논쟁은 다시 점화됐습니다.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과거 고위 관리의 자녀를 시험 없이 채용했던 제도)란 비판을 받게 됐고, 그 뒤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수험생·교수·정치인의 의견 표명이 잇따랐죠.

 

2.논쟁은 이번이 처음인가?

 

사실 사법시험 존폐 논쟁은 꽤 역사가 깊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기존의 사법시험을 대체할 로스쿨 도입의 필요성을 정부 차원에서 처음 제기했고, 김대중 정부 때도 도입을 검토했죠. 하지만 그때마다 기존 법조인들은 로스쿨은 한국과 같은 대륙법체계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등의 의견을 개진하며 만류했습니다. 2007년에서야 노무현 정부는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을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학전문대학원설치법을 만들게 되는데, 이 역시 무모하다는 비판을 받으며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법이 시행되고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이 쏟아진 뒤에도 논쟁은 계속됐습니다.

 

3.로스쿨은 왜 도입됐고 어떤 변화가 있었나?

 

2005년 당시 정부의 로스쿨 도입 취지는 특정 대학·전공에 쏠린 사법부 획일주의 탈피’ ‘고시낭인 양산에 따른 부작용 완화’ ‘변호사 수 증가를 통한 법률비용 절감등이었습니다. 실제 제도 시행 결과 다양한 전공과 경험을 가진 변호사들이 양성됐는데, 2014년 기준으로 로스쿨 합격자의 학부 전공 비율은 법학 49.4%, 비법학 50.6%였습니다. 의사나 회계사, IT 등 전문 자격을 가진 법조인들의 활동 영역도 점점 커지는 추세이죠. 당초 기대한 법률비용 절감도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사법시험 체제에서는 1년에 1000명 미만의 법조인이 배출됐지만, 로스쿨 도입 뒤에는 한 해 1800명 안팎의 인력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난 7월 기준 변호사 수는 2만명에 근접했는데요, 사람이 많아지고 경쟁이 심화되자 수임료를 낮게 받는 변호사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법률서비스에서 소외된 계층도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4.로스쿨 제도는 왜 비판받나?

 

로스쿨은 일부 계층이 부와 지위를 대물림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자주 언급되는 것은 높은 등록금인데 유명 사립대 로스쿨은 1년에 등록금만 2000만원, 국공립대는 1000만원 수준이라고 합니다. 로스쿨에서는 장학금 지원으로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지만 경제상황이 곤란한 이들에게 로스쿨 입학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로스쿨들이 향후 합격률을 고려해 지망생들의 출신 대학 등 스펙을 많이 본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를 제쳐두더라도 로스쿨은 4년제 대학 졸업이 기본 입학요건이므로 고졸이나 전문대 졸업자는 아예 법조인이 될 수 없습니다.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만 남는다면 개천에서 용 나는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것이란 아쉬움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죠.

 

로스쿨 졸업생들이 판검사에 임용될 때의 기준도 투명하지 않은데, 이는 현대판 음서제에 대한 대중의 의혹을 더 키우고 있습니다. 실제 대법원은 올해 처음으로 로스쿨 출신 변호사 중 경력판사 37명을 선발했지만 선발 기준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일부에서는 로스쿨 1~3기 졸업생 가운데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사람 중 법조인 자녀가 71명에 달한다고 얘기합니다.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가 판검사 임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5.그렇다면 사법시험을 계속 운영하는 게 낫지 않나?

 

사법시험 존치에 찬성하는 이들은 사법시험의 장점으로 학력 제한 없이 응시할 수 있는 점, 고액의 학비 없이 수험비용만 있으면 응시할 수 있는 점 등을 말합니다. 또 사법시험의 경우 선발 방법과 기준, 내용이 로스쿨에 비해 투명하게 공개된 편이라 신뢰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외부의 힘이 개입될 여지가 없기 때문에 돈과 연줄, 학벌에 상관없이 기회를 제공해 희망의 사다리가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주장에도 허점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법시험 공부에는 시간이 많이 드는 편인데, 대학 졸업 뒤에도 2~3년 이상을 쏟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한 달에 수십만원짜리 학원 강의를 몇 개씩 듣는 경우가 많은 만큼 돈도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언제부턴가 사법시험 합격자는 외국어고를 나온 서울 강남의 부유층 자녀들로 채워지고 있죠. “사법시험에 합격한 학생의 80% 이상이 10대 대학 출신이고, 75% 이상은 5대 대학 출신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이런 점을 근거로 로스쿨 제도를 옹호하는 측은 로스쿨은 다양한 장학금 제도를 운용하기 때문에 개천에서 용 나는사례가 오히려 더 많아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6.사법시험 논쟁은 법조인들의 밥그릇 싸움 아닌가?

 

사법시험 존폐를 둘러싼 공방은 크게 변호사 단체·비로스쿨 교수로스쿨 출신 변호사 및 재학생·로스쿨 교수간의 싸움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또 비로스쿨 법과대 교수들이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것은 향후 법조 지망생들이 로스쿨이 있는 대학으로만 몰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등 로스쿨 진영이 기존안대로 사법시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사법시험이 존치하면 역으로 로스쿨이 폐지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왔다는 지적도 있죠. 이 때문에 밥그릇싸움이란 비판은 커지고 있습니다...


7.현직 법조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나?

 

현직 판사·검사·변호사들의 생각은 제각각입니다. 대체적으로는 사법시험 폐지가 국민적 논의 끝에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고,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 많습니다...

 

8.상호 윈윈하는 방법은 없나?

 

없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9.전망은 어떤가?

 

사법시험이 내년이면 일부 폐지되기 때문에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여당 의원을 중심으로 사법시험을 존치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라 해당 법안의 향방에 따라 결론이 지어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올해 말까지는 사법시험 존폐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고시생들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서 더 힘을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습니다...

 

10.국민 여론은 어떤가?

 

지난 1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사법시험 존폐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그 결과 응답자의 61%는 사법시험을 지금처럼 유지해야 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죠. 하지만 표본의 수가 작기 때문에 이것이 국민들 전체적인 의견일 것이라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사법시험을 주관하고 있는 법무부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 것을 듣고 있다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입장입니다. 사법시험 존폐 공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률서비스의 대상자인 국민들의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