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후지산, 인생, 그리고 죽음(2015년 9월 24일)

divicom 2015. 9. 24. 10:07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8일 째 되는 날입니다. 아버지를 산에 모시고 왔지만 아버지와의 사별은 아직 실감나지 않습니다. 홍제동 아버지댁... 철쭉이 가득한 화단을 돌아가면 아버지를 뵐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물보따리가 된 듯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눈물이 납니다. 오늘은 제 아우의 생일... 미역국을 앞에 놓고 아버지를 떠올릴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마침 존경하는 선배의 산 이야기가 도착했습니다. 산속에서 태어나 산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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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 달, 산소, 인생

2015.09.24






















8월이 끝날 무렵 일본 후지산(富士山)에 올랐습니다. 등산 첫 날 푸른 하늘에 새털구름이 수놓은 좋은 날씨를 만나서 3,250미터 하치고메(八合目) 산장까지 올라가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악천후 예보와는 달리 후지산이 나를 품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장 숙소 바닥에 드러누워 다음 날 3,760미터의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즐거운 상상을 했습니다. 

상상은 깨졌습니다. 자정이 가까워지며 산은 폭풍우로 굉음을 뿜어내며 요동쳤습니다. 바람소리, 고산증세, 등산객들이 뒤척이는 소리 때문에 한숨도 못 자고 아침에 밖으로 나오니 악천후가 시야를 가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일행은 등정(登頂)을 포기했습니다.
바람은 몸을 가누기 힘들게 휘몰아쳤고 빗방울이 뺨을 얼얼하게 후려갈겼습니다. 하산 길은 뺨맞고 내쫓기는 꼴이었습니다. 나름 비와 추위에 대비했지만 등산화에 스며든 물기가 하체를 타고 싸늘하게 복부까지 올라왔습니다. 

정상을 밟지 못해 아쉬웠지만 후지산이 갖고 있는 산 맛을 어느 정도 맛본 것으로 족합니다. 고산병이 도지면 날이 좋아도 못 올라갈 수 있다는 예상도 했고, 그래서 아등바등 정상을 올라야 한다는 생각을 애초 갖지 않았습니다. 후지산 그 속에 들어가 본다는 것으로 만족할 자세를 가졌습니다. 

후지산은 매력적입니다. 분화구 때문에 꼭대기 부분이 약간 일그러졌지만 멀리서 보면 완벽한 삼각뿔 형태로 기하학적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룹니다. 십오륙 년 전 11월 말 후지산 아래 다누키코(田貫湖)에서 며칠 머문 적이 있는데, 밤새 비가 내린 후 활짝 갠 아침에 눈앞에 펼쳐진 후지산 설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일본열도는 3,000미터가 넘는 북알프스 연봉을 비롯하여 마치 봉우리를 심어놓은 듯이 산으로 꽉차 있는 나라입니다. 그중에도 유독 후지산은 고고하게 태평양 연안에 하늘로 우뚝 솟아 있습니다. 열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최고봉, 기하학적 아름다움, 살아 있는 화산이라는 사실이 일본인들로 하여금 이 산을 일본의 상징으로 삼고, 신성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등산길의 일본인들이 거의 각목 지팡이를 짚고 있는 것을 보며 한국의 산야에 쇠말뚝을 박은 일제 강점기의 일본인이 잠시 오버랩되었습니다.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후지산만큼 한 나라의 무게를 얹고 있는 산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일본인에게 후지산은 자연을 넘어 문화로 다가온다고 합니다. 예술의 소재와 배경으로 후지산은 독보적입니다. 후지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세계 유명 산악과는 성격을 달리합니다. 

우리 일행이 걷기 시작한 곳은 후지산 정상으로 통하는 4개의 등산로 중에 힘이 가장 덜 든다는 후지노미야(富士宮) 코스의 고고메(五合目)였습니다. 고고메는 자동차 도로가 끝나는 곳입니다. 후지산 관리 당국은 그곳에서 정상까지 고도별 구간을 나누어 고고메(五合目), 록고메(六合目) 식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고메마다 숙소 화장실 그리고 식음료와 비상물품을 파는 가게가 있으니 한국에서의 산장이나 대피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이 큐고메(九合目)이고 그 다음이 정상입니다. 

고고메의 고도는 2,400미터로 수목한계선이어서 이 지점부터 나무가 자라지 않고 바위틈에 자라는 고산식물이 띄엄띄엄 보일 뿐입니다. 또 민감한 사람에게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오후 4시쯤 고고메에서 바라본 세상은 발아래로 펼쳐진 운해(雲海), 머리 위로 새털구름이 박힌 파란 하늘, 띠처럼 산을 둘러싼 수목한계선 그리고 눈앞을 막고 서 있는 화산암석과 화산재로 덮여 있는 능선이었습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고산식물도 거의 없는 게 화성이나 달의 표면을 연상시켰습니다. 이 비생명체의 무미건조함과 낮아지는 산소 농도가 사람의 마음을 오묘하게 조여 옵니다.

이번 후지산에서 무척 인상적인 것은 달이었습니다. 고고메에서 걷기 시작할 때 달이 운해 위에 떠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그냥 마음속으로 ‘달이 떴네’하고 생각했습니다. 날짜를 보니 음력 7월 16일, 보름달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둠이 깃들면서 달은 광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3,000미터 지점에서 일행 중 앞서 가는 사람들과 뒤처져 있는 사람들 사이가 한참 벌어졌고 나는 그 사이에서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가이드의 충고가 아니었더라도 속도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고산병 증세로 조금 걷다가 숨을 몰아쉬며 쉬어야 했고 그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산등성이의 실루엣과 두둥실 떠오른 달이었습니다. 

휘엉청 밝은 달을 보다가 순간적으로 ‘달을 다시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인들은 달을 잃거나 달을 떠나 살았습니다. 그 동안 기술문명이 달을 지워버렸습니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한 이후 우리는 달의 신화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냥 분화구 암석덩어리로 판명이 났으니까요. 그리고 거의 50년에 걸쳐 끝없는 우주 탐사로 달은 관심의 대상이 아닌 듯이 멀어져갔습니다. 
인류가 도시문명으로 이동하면서 달빛은 더욱 희미해졌습니다. 서울의 밤하늘에 뜬 달은 벽에 그려놓은 그림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달빛은 도시 조명에 가려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날 밤 컴컴한 후지산 기슭에서 달은 태고의 조명 기능을 회복했습니다. 달빛 덕택에 가파른  화산석 등산로를 더듬으며 걸을 수 있었습니다. 3,000미터에서 3,250미터 하치고메(八合目)까지 1시간 남짓한 산행은 달이 없었다면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교교한 달빛, 등산화가 화산모래를 밟을 때마다 서걱서걱하는 소리, 헉헉거리는 내 숨소리, 고산의 차가운 밤공기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숨은 차고 머리는 어지러웠지만 한편으로 기분이 맑아졌습니다. 후지산에 오르려는 사람에게 달을 보고 산행 날짜를 정하라고 충고해주고 싶습니다.

후지산을 오르면서 산소가 무엇인지를 실감했습니다. 가끔 국내의 높은 산을 오를 때 가장 힘든 것은 배낭의 무게였습니다. 그런데 6킬로그램 정도 무게의 배낭을 지고 가파른 산을 오르면서 배낭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고산병의 공포감에 압도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작년 알프스 샤모니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아귀뒤미디 봉(3,777미터)에 올라갔다가 고산증세로 혼쭐이 난 적이 있어서, 그게 겁나기도 하고 야릇한 매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약을 먹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지만 고산증세는 사람에 따라 정도가 달랐습니다. 분명한 것은 나이가 많을수록 정도가 심한 것입니다. 호흡에 불편을 느끼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증세였습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땅이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후지산이 화산이어서 지진이 느껴지는 게 아닐까 했더니 가이드가 “후지산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선생님 몸이 산소가 모자라서 그런 겁니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올라갈수록 두통과 현기증이 자주 찾아왔습니다. 3,000미터 고도에 이르러서는 손가락 끝이 저리는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의지하는 스틱을 잡지 못하거나 저리는 증세가 확산될까봐 겁이 덜컥 났습니다. 잠시지만 혼자 걷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이 더 컸습니다. 

인간이 문명을 자랑하지만 생태계의 울타리를 벗어나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공기 중 산소의 구성비는 20.9퍼센트입니다. 그러나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압의 영향에 의해 유효산소농도가 줄어듭니다. 하치고메(八合目) 3,250미터에서 산소농도는 14.4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일상 숨 쉬던 산소가 30퍼센트 이상 줄었으니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치입니다. 산소 농도가 25퍼센트로 올라가면 이 세상의 숲은 모두 불에 타 없어질 것이고, 15퍼센트 이하가 되면 불을 쓸 수가 없다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산소 농도만 갖고도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공간이라는 게 얼마나 협소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이 탓인지 주변의 변화 탓인지 요즘 들어 죽음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이런 상념이 후지산을 당겼는지도 모릅니다. 
후지산에서 나를 둘러싸고 끌어당기는 것은 하늘, 달, 구름, 화산 분화구같은 비(非)생명체였습니다. 우주공간에 떠 있지 않고 단지 후지산 수목한계선 위에만 서 있어도 나를 뒤덮고 있는 것은 비생명체의 세계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삶이 덧없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