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숙 2639

노년일기 76: 선거 구경 (2021년 4월 6일)

내일은 선거하는 날입니다. 서울과 부산의 시장을 새로 뽑는 선거입니다. 선거는 '참여'인데 저는 '구경'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찍을 거냐고 물으면 그냥 웃습니다. 거리에 걸린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웃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후보, 서울의 유서 깊은 곳을 다 없애 서울을 천박한 졸부들의 놀이터로 전락시킨 후보, 아무 것도 해본 것이 없으면서 그럴싸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 내건 후보들... 난세엔 현명한 사람이 숨는다더니 그 말이 참말인가 봅니다. '세상엔 장의사적인 직업과 산파적인 직업'이 있는데, 갈등과 모순이 있어야만 사는 세력이 장의사적인 직업이고 그중에 제일 고약한 게 정치가들이라고 하셨던 채현국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이 엊그제 돌아가시어 어제 발인식이 열..

나의 이야기 2021.04.06

미얀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2021년 3월 31일)

지난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후 지금까지 51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 중 30여 명은 어린이들이라고 합니다. 지난 27일 '미얀마군의 날' 하루에만 100명이 넘게 숨졌고, 그 중 12명이 어린이였습니다. 지금까지 2,574명의 시민이 구금됐고, 37명이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라고 합니다. (나무위키 참조). 3월 9일엔 독립언론 〈미얀마 나우〉를 포함, 언론사 다섯 개가 폐쇄되었고 기자들이 체포했다고 합니다. 미얀마 소식을 들을 때마다 탄식이 나옵니다. 광주민주화항쟁이 떠오릅니다. 전두환 군사정부에게 재갈 물린 언론은 오늘의 미얀마를 닮은 상황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고, 한국인들조차 광주의 실상을 알지 못했습니다. 광주의 시민들이 얼마나 분하고 억울했을까요? 사십여 년이 ..

동행 2021.03.31

아버지의 죽음: 딕 호이트 (2021년 3월 20일)

아침 신문을 보다가 울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고통과 분노와 거짓이 페이지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 때문에 운 것은 아닙니다. 저를 울린 것은 딕 호이트 (Dick Hoyt)의 타계 기사였습니다.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며 아파했을 딕의 영혼을 위로하며 삼가 그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기사는 제가 본 최초의 존댓말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쓴 이용균 기자에게 감사합니다. Dear Dick, You did more than your best... 뇌성마비 아들과 함께 달린 40년, 아버지들의 영웅 ‘별’이 되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보스턴 마라톤의 상징’ 딕 호이트 타계 지미 V 끈기상 수상 딕 호이트(왼쪽)가 아들 릭 호이트와 함께 2013년 로스앤젤레스..

동행 2021.03.20

'부동산 국가'의 '토지공개념' (2021년 3월 17일)

손호철 교수의 글을 좋아하는 건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LH) 사태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과 같은 일이 아닐까 짐작만 했는데, 손 교수의 글을 보니 맥락이 잡히고 나아가야 할 방향도 보입니다. 저도 손 교수가 인용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 가슴이 뭉클했었는데... 손호철의 응시]멍청하긴, 해답은 토지 공개념이야!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중략)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가슴을 뜨겁게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다. 충격적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는 촛불에도..

동행 2021.03.17

진화론과 인간의 미래 (2021년 3월 12일)

오늘 아침 신문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글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박주용 교수가 쓴 글입니다. '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 ⑪인류는 어디로 갈 것인가…불편해하지 마라, 우린 아직 선택할 수 있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신문의 한 면을 차지하는 긴 글이라 많이 줄여 옮겨둡니다. 맨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박 교수가 소개한 영화와 책 중에서도 저는 '신들의 재판'과 '가타카'를 특히 좋아합니다. ------------------------------------------------------------------------ 과학을 뜻하는 ‘사이언스(science)’의 어원은 라틴어의 scientia이고, 이것은 ‘알다’를 뜻하는 scire에서 나왔다고 한다. ..

동행 2021.03.12

수선화, 그리고 외로움 (2021년 3월 11일)

미세먼지 가득한 거리에서도 꽃들은 별처럼 빛납니다. 갖가지 색깔의 꽃들 중에도 목이 길고 노란 수선화가 유독 눈길을 끕니다. 꽃말은 '자기애'.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외롭겠지요. 수선화를 보면 영국의 낭만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 (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시 '나는 한 조각 구름처럼 외로이 떠돌았네 (I Wandered Lonely As a Cloud)'가 떠오릅니다. 저는 이 시의 4연 중에서 첫 연, 그 중에서도 첫 문장을 가장 좋아합니다. 삶도 죽음도 구름 같다는 생각 때문이겠지요...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 Whe..

오늘의 문장 2021.03.11

나의 예일대학 (2021년 3월 7일)

상황에 따라 생각나는 친구가 다르듯 기분에 따라 다른 책을 펼치게 됩니다. 제법 따끈한 봄볕 속을 걸은 후라 바다 생각이 난 걸까요? 이 눈에 들어옵니다. 166쪽 중간의 한 문단이 미소를 자아냄과 둥시에 질문을 던집니다. "나의 예일대학은 무엇인가?' "...만일 나 가운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장점이 있다고 하면 또 내가 정상적으로 야망을 품고 있는, 매우 작기는 하지만 고귀한 침묵의 세계에 있어서 어떤 명성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면, 또 만일 앞으로 대체적으로 사람으로 했어야 할 것을 하게 된다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임종시에 유언집행인, 아니 채무자가 나의 책상 속에서 어떤 귀중한 원고를 찾아낼 수 있다면, 나는 여기서 미리 이 모든 영광이 포경의 덕택임을 밝혀두겠다. 포경선은 나의 예일..

오늘의 문장 2021.03.07

변희수: 나라가 죽인 젊은이 (2021년 3월 4일)

바로 어제 아침 신문에서 독일군 최초의 트랜스젠더 대대장 아나스타샤 비에팡 (Anastasia Biefang)에 관한 글을 읽으며 변희수 하사를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같은 신문에서 변 하사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사를 보는 순간 비명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 나라의 후진적 사고와 체제가 또 한 사람의 젊은 목숨을 앗아간 겁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나라가 부유해지면 한국이 곧 선진국 그룹 'G-7'에 들 거라고 떠드는 사람들과 매체들이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그 어느 나라보다 심한 한국이지만 국민 소득을 평균내면 부자 국가라는 겁니다. 그러나 '선진국'은 돈만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은 'G-7'에 들더라도 '돈 많고 협량한 졸부'를 벗어나지 뭇할 겁니다. 아나스타샤는 20년..

동행 2021.03.04

3월, 혹은 March (2021년 3월 3일)

어제 마트에 가니 정육코너 앞에 사람이 유독 많았습니다. 오늘이 3월 3일 '삽겹살데이'라 삼겹살을 세일한다고 했습니다. 두 개에 천오백 원하는 '제주 무' 세일 코너에선 젊은 직원이 커다란 투명 비닐에 담긴 무를 매대에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이만치 떨어져서 그이가 일을 마치길 기다리는데 여인 하나가 저를 밀치고 매대로 가더니 쏟아지는 무 중에서 큰 것을 고르느라 바빴습니다. 저렇게 하면 직원이 일하는 데도 방해가 되고 자기도 위험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름 붙은 날과 행사가 많아지며 하루 지난 과거부터 여러 해 지난 과거까지 기억돼야 할 날들과 기억돼야 할 사람들은 빠르게 잊히고, 무엇이 중요한가를 고민하는 일도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억과 고민 없이는 나아감..

동행 2021.03.03

꽃집 (2021년 2월 28일)

아메리칸 블루 화분을 옮긴 후 허리가 고장나긴 했지만 고장은 제 탓이지 꽃 탓이 아닙니다. 회색 하늘에 아랑곳하지 않고 색색으로 피어 세상을 밝히는 꽃들은 한 송이 한 송이 다 등대입니다. 겨울을 이기고 봄으로 가는 꽃들이 특히 아름다운 것처럼 꽃집들도 2, 3월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거리에 꽃집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컴컴했을까요? 아래에 일러스트포잇(illustpoet) 김수자 씨의 블로그 '시시(詩詩)한 그림일기'에 실린 꽃집 얘기를 옮겨둡니다. 맨 아래 글은 김수자 씨의 글입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시시한 그림일기'로 연결됩니다. 시 한편 그림 한장 꽃집 - 박연준 illustpoet ・ 2018. 1. 23. 19:48 URL 복사 이웃추가 종이에 색연필 꽃집 박연준 빛이 빛에게 수분이 수..

동행 2021.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