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을 보다가 울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고통과 분노와 거짓이 페이지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
때문에 운 것은 아닙니다.
저를 울린 것은 딕 호이트 (Dick Hoyt)의 타계 기사였습니다.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며 아파했을 딕의 영혼을 위로하며
삼가 그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기사는 제가 본 최초의 존댓말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쓴 이용균 기자에게 감사합니다.
Dear Dick,
You did more than your best...
뇌성마비 아들과 함께 달린 40년, 아버지들의 영웅 ‘별’이 되다
‘보스턴 마라톤의 상징’ 딕 호이트 타계
지미 V 끈기상 수상 딕 호이트(왼쪽)가 아들 릭 호이트와 함께 201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ESPY 지미 V 끈기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지미 V 끈기상은 미국 대학 농구코치 지미 발바노를 기린 상으로 스포츠에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들에게 주어진다. AP연합뉴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들 릭을
보통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던 아빠
불굴의 의지로 32차례 레이스
허리에 끈 연결해 철인3종 뛰고
45일 동안 미국 대륙 횡단 기록도
그의 ‘위대한 여정’은 감동이었다
딕 호이트 부부는 1962년 아들 릭 호이트를 낳았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태어나기 직전, 탯줄이 목을 감았고, 뇌에 산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병원의 의사들은 뇌성마비 진단을 내렸고 아들이 사실상 식물인간이며, 보호시설로 보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호이트 부부는 아이의 눈동자가 방 구석구석을 따라 움직이는 걸 보고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꼭 보통의 아이처럼 키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헬렌 켈러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어머니는 릭의 손가락을 까슬한 사포에 대고 그려가며 알파벳을 가르쳤습니다. 아버지는 2010년 쓴 책에서 “우리 가족이 릭의 웃음과 고갯짓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적었습니다. 식물인간 취급을 받았던 릭은 부모의 정성 덕분에 분별력을 갖췄음을 증명했습니다.
릭이 열 살 되던 1972년, 터프트대학의 공학자들이 릭을 위한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고 스티븐 호킹 박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릭도 머리를 움직여 원하는 글자를 골라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드디어 릭 인생의 ‘첫 한마디’를 표현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안녕 엄마, 아빠’가 아니라 ‘브루인스 파이팅(Go, Bruins)’이라고 적었습니다. NHL 보스턴 브루인스가 스탠리컵 결승에 올라있었죠.
말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릭을 ‘보통 사람’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스포츠’였습니다. 스포츠를 함께할 때 릭은, 공립학교 입학을 거부당한 뇌성마비 환자가 아니라 온전한 인격을 가진 보통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1977년 봄, 사고로 몸을 쓸 수 없게 된 라크로스 선수를 돕기 위한 5마일 자선 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릭이 아버지 딕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제가 달릴 수 있다면 장애가 없는 보통 사람의 기분을 느낄 것 같아요.”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릭은 휠체어에 타고, 딕이 뒤에서 밀면서 뜁니다. 이후 약 40년 동안 온 세상에 ‘할 수 있다’는 영감을 준 ‘팀 호이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희망의 전도사 딕 호이트(뒤)가 뇌성마비 아들 릭 호이트의 휠체어를 밀면서 보스턴 마라톤 대회 후반 언덕 코스를 힘겹게 달리고 있다. 딕 호이트는 1977년부터 약 40년 동안 아들 릭 호이트와 함께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 등 1000회가 넘는 레이스를 달리며 ‘희망 전도사’ 역할을 했다. 호이트는 지난 18일 심장질환으로 별세했다. AP연합뉴스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보스턴 마라톤은 ‘팀 호이트’의 마라톤이기도 합니다. 처음 참가할 때는 주최 측이 ‘일반부’ ‘휠체어부’ 어느 곳에도 낄 수 없다며 공식 참가를 거부했지만, 비공식 자격으로 매년 참가한 끝에 정식 참가 자격을 얻었고 곧 ‘팀 호이트’는 보스턴 마라톤의 명물이 됐습니다. 팀 호이트는 보스턴 마라톤만 32차례 참가했습니다. ‘팀 호이트’는 마라톤만 뛴 게 아닙니다. 트라이애슬론과 더 힘든 철인 경기에도 나섰습니다. 수영 종목 때는 릭이 보트에 타고, 아버지 딕이 허리에 끈을 연결해 수영으로 끌고 갔습니다. 때로는 손으로 보트를 밀며 다리로만 수영했죠. 사이클과 마라톤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팀 호이트’는 함께 달렸습니다. 1992년에는 자전거와 마라톤으로 미국 동서 횡단에 성공했습니다. 45일 동안 6011㎞를 달렸습니다.
2009년 보스턴 마라톤은 ‘팀 호이트’의 1000번째 레이스였습니다. 팀 호이트의 마라톤 풀코스 최단기록은 1992년 해병대 마라톤 대회에서 기록한 2시간40분47초입니다. 그때 아버지 딕의 나이는 52세였습니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때 출발선 근처에 ‘팀 호이트’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앞에 앉은 릭이 오른손을 힘껏 뻗은 모습입니다. 마지막 레이스로 삼으려 했지만 결승점을 얼마 남기지 않고 폭탄테러가 벌어졌습니다. 팀 호이트는 2014년에 다시 출전했고 32번째 보스턴 마라톤 완주를 마무리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한 달리기는 릭을 보통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했습니다. 한때 공립학교 입학을 거부당했던 릭은 결국 보스턴대학에서 특수교육 학위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릭은 2009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아빠와 함께 달릴 때면, 우리 둘을 묶는 특별한 힘이 느껴져요. 아빠와 내가 함께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죠”라고 말했습니다. 팀 호이트가 외친 ‘그래, 할 수 있어!(Yes, You Can!)’는 세상의 모든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커다란 영감을 주었습니다. 팀 호이트는 2015년 현대자동차의 광고에도 등장했습니다.
수만㎞가 넘는 오랜 달리기는 이제 모두 끝났습니다.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영웅이자 멘토였던 딕 호이트는 지난 18일 심장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0세. 아내 주디가 떠난 지 11년 뒤였습니다. 릭의 동생 러스는 보스턴 글로브와 인터뷰하면서 “형의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소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192202005&code=980701#csidxd753ac02e692f419a6c49274dab9f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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