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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일기 194: 시장 사람들 (2023년 10월 12일)

아이들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니 사는 곳이 중요하고, 저처럼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인의 경우엔 생활을 영위하는 데 드는 비용 때문에 사는 지역이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좋습니다. 시장이 가까우니까요. 엊그제 시장에 가니 가끔 들르던 청과물 가게의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어디 아픈가... 40대 부부를 걱정했는데, 오늘은 열려 있었습니다. 세 개에 천 원이라 쓰인 골판지가 꽂혀 있는 상자의 파프리카를 고르며 옆에 있는 남자 주인에게 "엊그제 문 닫았지요? 왔다가 허탕 쳤어요" 하며 웃으니 "집에 일이 좀 있었어요" 심상하게 답하고는 골판지를 집어들었습니다. '3개 1,000원'이라 쓰인 것을 쓱쓱 지우며 "지금부터 파프리카 다섯 개 천 원!' 소리치더니 골판지에도 '5개..

동행 2023.10.12

노년일기 193: 아들의 흰머리 (2023년 10월 9일)

저는 젊어서도 머리가 아주 검지 않았는데 아들의 머리는 푸른 빛이 돌 정도로 검었습니다.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칼을 보면서 아름다운 자연에서 받는 감동 같은 감동을 느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들의 머리칼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검던 머리가 갈색으로 변하고 윤기가 없이 꺼칠해 보이기 일쑤입니다. 밤 새우기를 밥 먹듯 하는데다 밤낮으로 신경 쓸 일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아들의 머리칼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기에 저렇게 셀까 안쓰러워한 적도 있고, 젊어서부터 멜라닌 색소가 부족했던 나 때문인가 미안한 적도 있었지만, 그가 이뤄가는 것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세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아들의 머리를 보면 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제 머리가 희어지는 걸 견디..

동행 2023.10.09

노년일기 192: 인류의 '베프' (2023년 10월 6일)

얼마 전 처음 만나는 후배와 얘기하다가 제 주변에 머물다 저세상으로 간 사람이 아주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싫어하던 사람도 있고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늘 우연히 들춘 옛 노트에서 모차르트가 죽음에 대해 쓴 편지를 읽었습니다. 226쪽 모차르트가 삶의 끝 무렵에 아버지에게 쓴 글입니다. 제 곁을 떠난 사람들중에도 죽음에 대해 모차르트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겠지요... "죽음이란 우리 삶의 진실로 궁극적인 목적이기에 지난 몇 년간 나는 이 가장 진실되고 가장 좋은 인류의 친구인 죽음과 친하게 되어서, 그것은 더 이상 나를 두렵게 하지 않고 마음이 놓이게 하고 위로를 주는 것이 되었습니다. 죽음이란... 우리의 진정한 축복의 열쇠입니다."

오늘의 문장 2023.10.06

노년일기 191: 어머니의 고스톱 (2023년 10월 3일)

일주일 전 어머니를 만나고 온 후 아팠습니다. 어제 어머니를 만나고 온 후엔 펑 젖은 옷을 다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무리 다려도 옷에선 자꾸 물이 나왔습니다. 어머니를 모시러 경로당에 가니 어머니는 다른 분들이 고스톱하는 걸 구경하고 계셨습니다. "난 이제 못해. 계산을 빨리빨리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거든." 경로당에서 돌아오는 길,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한때 고스톱은 어머니의 취미였습니다. 어머니는 늘 친구분들과 고스톱을 치셨고 그 자리는 늘 웃음바다였습니다. 고스톱을 못 치는 제게 어머니는 늘 이담에 무슨 재미로 살 거냐고 힐난조로 말씀하셨습니다. 경로당에서 어머니의 집까지는 전봇대 두어 개 거리지만 어머니는 한 번에 걸어내실 수 없었습니다. 중간 지점 편의점 앞 파라솔 아래 앉아 차를 마시..

나의 이야기 2023.10.03

다시 9월이 가는 소리 (2023년 9월 30일)

추석 연휴와 함께 9월이 떠나갑니다. 귀향하는 사람들, 귀경하는 사람들,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사람들, 파란 하늘의 흰구름과 회색 구름... 그 모든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9월이 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부디 즐거운 만남이기를, 부디 다음이 있는 헤어짐이기를 기원하며 5년 전 이맘때 서울시 '50플러스 포털'에 연재하던 '김흥숙의 시와 함께'에 썼던 '구월이 가는 소리'를 사진은 빼고 다시 옮겨둡니다. [시와 함께 5] 구월이 가는 소리 혹독한 여름 끝 구월이 오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어느새 구월이 떠나갑니다. 여름 절반 가을 절반, 이번 구월은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여을’이었다고 할까요? 언젠가 구월을 기다리며 듣던 노래를 구월 막바지에 듣습니다. 구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면 꽃잎이 피는 소..

동행 2023.09.30

GO (2023년 9월 26일)

떠나고 싶지 않아도 떠나야 할 때가 있고 보내고 싶지 않아도 보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상황,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느끼는 슬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슬픔 속에서 하는 수 없이 발견하는 행운... 그것이 우리를 위로합니다. 지미 스트레인 (Jimmy Strain)이 어제 디지털 싱글로 발표한 포크 음악 'GO'가 우리를 위로하는 까닭입니다. 아래는 지미가 직접 쓴 한글, 영문 가사와 유튜브 링크입니다. GO You’ve gotta go when you gotta go 가야 할 때는 가야 해요 You’ve gotta leave when you gotta leave 떠나야 할 때는 떠나야 해요 You have to let them go when they gotta go 떠..

동행 2023.09.26

노년일기 190: 구름(2023년 9월 22일)

내일은 추분, 이제야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엔 흰구름이 대가의 붓질 같습니다. 저 큰 화면에 큰 붓으로 쓱쓱 그려 넣는 마음은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파란 하늘이 아름답다 하지만 흰구름이 없다면 파랑의 아름다움이 부각되기 어렵겠지요. 가끔은 구름에 훅! 큰 숨 불어넣어 하얀 구름이 포말처럼 흩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가을 하늘은 인생을 은유합니다. 육체가 겪는 고통은 육체가 평화로울 때 할 수 있는 일들의 즐거움을 부각시키고 정신이 겪는 힘겨움은 오히려 정신의 고양을 격려합니다. 젊은이들은 파란 하늘의 아름다움에 취하지만 노안은 구름의 아름다움에 감사합니다. 늙어가는 일은 깨닫는 일,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는 일! 눈, 코, 입, 귀... 가을이 스며듭니다. 여름내 지친 사람들 위로하는..

나의 이야기 2023.09.22

틱 낫 한 스님의 음식 명상-당뇨병 예방법 (2023년 9월 18일)

텔레비전에서 미국 인구의 10퍼센트가 당뇨병 환자라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보도에 등장한 의사와 의학자들에 따르면 당뇨병의 가장 큰 원인은 과식입니다. 그 보도를 접하니 룸메이트의 입원 기간에 병원에서 다시 읽었던 틱 낫 한 스님의 음식에 대한 글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10일에도 이 블로그에 인용했던 스님의 책 의 25쪽에 나오는 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당뇨병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이 먹고 빨리 먹는 건 당뇨로 가는 지름길... 음식을 앞에 두고 스님이 행하는 다섯 가지 명상을 배워 당뇨병을 피하시길 바랍니다. The Five Contemplations This food is the gift of the whole universe, the Earth, the sky, and much ha..

동행 2023.09.18

코리아타임스에 실린 김수자 전시회 '동심원' 기사 (2023년 9월 16일)

오늘 아침 코리아타임스 (The Korea Times) 인터넷판에 실린 김수자 전시회 '동심원'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기사가 너무나 좋았기 때문입니다. 코리아타임스 문화부 권미유 기자님께 감사하며 기사를 옮겨둡니다. 기사를 복사하여 붙여넣기를 시도했으나 그림 사진은 복사가 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코리아타임스 기사로 연결되어 그림과 작가의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koreatimes.co.kr/www/art/2023/09/690_359247.html# Entertainment & Arts Sat, September 16, 2023 Kim Soo-ja's 'Concentric Circles' offers quiet response to noisy worl..

동행 2023.09.16

김수자 전시회 '동심원' 3 (2023년 9월 13일)

김수자 씨의 전시회 '동심원 (Concentric Circles)'이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갤러리 담에서 진행 중입니다. 어제 예고한 대로 오늘은 그 전시를 소개하는 영문 자료를 올립니다. 중간에 갑자기 글씨가 커진 건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소치입니다. Press Release on Kim Soo-ja Solo Exhibition Color Pencils Erasing Digital Stains Amid the ever-increasing influence of social network services (SNS), the world grows more shallow and noisy than any other time. The digital craze encourages peopl..

동행 2023.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