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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철과 최병소(2026년 2월 9일)

한국은 천재를 알아보는 데 서투르고 천재를 인정하는 데 인색합니다. 보통 사람, 즉 생활인을 평가하는 잣대를 천재에게 들이대어 천재가 고사하게 하거나 숨게 합니다. 가수 김수철 씨(1957~)는 그런 나라의 천재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지금껏 받은 박수는 받아야할 박수보다 훨씬 작지만, 그는 괘념치 않고 자기길을 가며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 계획을 짜는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말합니다.그가 가수 겸 작곡가로 일하면서 30년 넘게 그린그림을 14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전시한다고 합니다. 저는 한강을 건너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한 번은 건너야겠습니다. 김수철 씨의 전시회와 함께 봐야 할 전시가 하나 더 있으니까요. 바로 페로탕 갤러리에서진행 중인 화가 최병소 씨(1943-202..

동행 2026.02.09

성수동 백일몽 (2026년 2월 5일)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십대 중반 성수동은 낯익었습니다.화양리 쪽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며 버스 차창을 통해 저만치 성수동을 보기도 했고, 걸어가며 조금 더 가까이서 성수동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곳은 서울의 대표적 공업지역이었고 10대, 20대들에겐좀 이질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곳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플'이 되었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한국은 매일 변하는 나라이니성수동의 변화도 당연하겠지만 '핫플'이 되었다는 건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어제 성수동에 갔습니다. 어제 본 성수동은 다른 나라, 다른 도시였습니다. 유명한K팝 주도 기업들의 본부가 있는가 하면, 전 세계 유명 브랜드들의 팝업 스토어들이 넘쳐났습니다. 거리마다 ..

동행 2026.02.05

AI 대나무숲 (2026년 2월 3일)

'대나무숲'이라는 말은 삼국유사의 경문왕 관련 설화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왕의 귀가 왕좌에오른 후 갑자기 길어졌는데, 그걸 아는 사람은두건을 만드는 장인 한 사람뿐이었다고 합니다.그 사람은 평생 그 사실을 말하지 않다가 죽기 전에야사람 없는 도림사 대나무 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고,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지요.(나무위키: https://namu.wiki/w/%EA%B2%BD%EB%AC%B8%EC%99%95)인터넷 용어 '대나무숲'은 특정 분야 사람들이 속내를 털어놓는 SNS 공동 계정인데, 지난 1월 28일 마침내 사람 아닌 AI에이전트들의 대나무숲이 생겼다고 합니다. '몰트북 (Moltbook.com)'이라는 미..

동행 2026.02.03

노년일기 275: 금반지(2026년 1월 31일)

현관문 앞에 작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우리집에 왔던 택배 상자 중에 가장 초라했습니다.궁금한 마음으로 상자를 집어들고 앞면에 적힌 것을보니, 주소는 정확히 우리집이지만 받는 사람의 이름(세 글자 중 두 글자)과 전화번호(010-중간 숫자)가 다 낯설었습니다. 품목이 '주얼리'인 걸 보니 잘못 온 게 틀림없었습니다. 잘못 배달된 걸 알고 찾으러 오겠지 하고 그냥 문 옆에 두었습니다. 아침에 온 택배 상자가 저녁이 되어도 여전히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받을 사람의 전화번호가다 적혀 있었으면 연락했을지 모르지만, 망설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문하지 않은 물건을 배달해서전화를 유도하는 신종 사기가 있다는 얘길 들었으니까요. 저녁 늦게 집에 들른 아들이 상자에 쓰인 이름 일부를 보더니 옆집으로 갈 게 ..

동행 2026.01.31

블랙 코미디 (2026년 1월 29일)

늙으면 다 그런가책을 읽다 보면 하품이 나1984처럼 재미있는 책도마찬가지야 하품이 나면 눈물이 나고눈물이 나면 콧물이 나핑핑 팽팽 코 풀다 보면결국 웃음이 나블랙 코미디를 볼 때처럼 책 읽다 울고 웃는 시간은사춘기 같은 걸까갱년기 같은 걸까 아니면 모든 것을 보고시침 떼는 하늘이나모두를 묻고도 덤덤한흙의 장난일까 그래서 늙은이들이책을 읽지 않는 걸까?그래서 조지 오웰*이늙기 전에 죽은 걸까? *조지 오웰 (George Orwell: 1903-1950): 소설 의 작가.

나의 이야기 2026.01.29

노년일기 274: 경상도 큰애기들 (2026년 1월 27일)

잔설 남은 길을 걸어 오랜만에 찾은 단골 카페,창밖 대추나무와 나무를 안고 있는 작은 뜰이남은 눈 덕에 더욱 아름답습니다.창가 자리에 젊은 여성 셋이 앉아 있습니다. 제가 늘 앉던 구석자리엔 이미 혼자 온 손님이있고 앉을 곳은 세 여성 지척뿐입니다. 세 사람과 저 사이에는 한 사람이 간신히지나갈 수 있는 공간만 있고 그들의 얘기는일행의 얘기처럼 또렷이 들립니다. 립밤으로 시작한 대화가 화장품과 화장법으로 이어집니다. 젊어서일까 생각하니 제 젊은 날이 떠오릅니다. 외모가 오늘날처럼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라 그랬을까요? 친구들과 저는 화장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신문 기자로 일할 때여서인지 사석의 소재도 공적 주제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대화의 소재도 그렇지만 창가 손님들의 말투와음량이 집중을 방..

동행 2026.01.27

궁궐로 출근하는 사람 (2026년 1월 24일)

인터넷 바다에서 우연히 전에 취재해 쓴 인터뷰 기사를 만났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여기에 옮겨둡니다. 인터뷰의 주인공 장수영 씨는 지금도 즐겁게 덕수궁으로 출근하고 있을까요? 부디 그러시길, 건강하고 보람차게 생활하시길 빕니다. 이 글은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에서 발행하는 한국 문화 예술 전문 계간지 '코리아나 (Koreana)'의 2019년 겨울호에 실렸습니다. '코리아나'는 1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곳곳의 독자들을 만납니다. 링크를 클릭하면 '코리아나' 웹사이트로 연결됩니다.https://www.koreana.or.kr/koreana/main.do 궁궐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해설하다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외국인에게 길을 안내해 주면 묘한 뿌듯함을 느끼기 마..

Koreana 2026.01.24

음악을 듣는 시간 (2026년 1월 22일)

요즘 어린이들이 제 나이쯤 되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제일 먼저 영어가 떠오를지 모릅니다. 젖먹이 아기 옆에전자기기에서 나오는 영어를 틀어놓는 엄마들이 적지않으니까요. 그러나 요즘 아이들보다 운 좋은 어린이였던 제게어린 시절의 기억은 음악으로 시작합니다. 축음기에서흘러나오는 체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의 '신세계교향곡'과 '시냇물은 졸졸졸졸' '아빠하고 나하고' 등 동요들이지요. 음악은 그렇게 책 읽는 재미를 알기 전 어린 저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저희 세대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학생들 대부분이클래식 음악으로 음악 듣기를 시작했습니다. 물론거리의 상점에서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흔히 '뽕짝'이라불리는 대중가요가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요즘 K팝과 트로트처럼 대세는 아니었습니다. 클래식과..

동행 2026.01.22

얼굴 (2026년 1월 20일)

어젠 오랜 친구들을 만나러 시내에 나갔습니다.버스 창문밖 서울은 많이 달라져 보였지만,버스 안의 늙고 젊은 얼굴들은 별로 달라진 것같지 않았습니다. 긴장, 불안, 불만, 외로움이풍기는 얼굴들... 행복한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아마음이 아팠습니다. 신호를 기다리는 안국동 횡단보도엔 매서운바람이 불었습니다. 미세먼지를 밀어낸 바람이고마우면서도 미세먼지는 밀어내되 이렇게 차갑지 않을 수는 없을까, 왜 모든 좋은 것엔, 바람에게까지도 세금 같은 그림자가 붙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네 사람이 한 테이블에 앉은 건 한참만이었습니다.지난달 한 친구의 어머님이 돌아가셔서장례식장에서 잠깐 보긴 했지만, 네 사람이 네 사람을 보기 위해 만난 건 오랜만이었습니다. 저를 뺀 세 사람은 모두 노화가 정지된 듯한모습이었습니다. ..

동행 2026.01.20

아빠 김병기, 엄마 이혜훈 (2026년 1월 18일)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 김병기 씨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이혜훈 씨의 재산 축적과 자식 지원 과정을 보고절망하며 자녀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저 하나는 아닐 겁니다. 저도 평생 제법 열심히 일하며 살았지만 그 사람들처럼 머리 써서 돈을 모으기는커녕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에게쓰기 바빴고 제가 사는 방식이 옳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부자 많은 나라의 돈 없는 노인이 되어 보니,돌아가신 어머니가 왜 늘 제게 '매달린 개가 누워 있는개들을 안쓰러워한다'며 혀를 차셨는지 알 것 같고,매달 월세와 공용 요금을 내느라 끙끙 앓는 제 아이에게미안합니다. 그런대로 보람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제가 이런회의와 미안함을 느낄 때, 김 씨와 이 씨처럼 돈 많고'헌신적인' 부모를 갖지 못한 청년들은 어떤 ..

동행 2026.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