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193: 아들의 흰머리 (2023년 10월 9일)

divicom 2023. 10. 9. 21:26

저는 젊어서도 머리가 아주 검지 않았는데

아들의 머리는 푸른 빛이 돌 정도로 검었습니다.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칼을 보면서 아름다운

자연에서 받는 감동 같은 감동을 느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들의 머리칼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검던 머리가 갈색으로 변하고

윤기가 없이 꺼칠해 보이기 일쑤입니다.

밤 새우기를 밥 먹듯 하는데다 밤낮으로 신경

쓸 일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아들의 머리칼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기에

저렇게 셀까 안쓰러워한 적도 있고, 젊어서부터

멜라닌 색소가 부족했던 나 때문인가 미안한 적도

있었지만, 그가 이뤄가는 것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세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아들의 머리를 보면 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제 머리가 희어지는 걸 견디지

못하셔서 저만 보면 염색을 하라고 조르셨습니다.

 

어머니의 강요(?)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염색을

하는 동안, 저는 참 괴로웠습니다. 원래 나쁜 눈이

더 나빠지는 것 같았고 약한 피부에는 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다 강경화 외무장관이 흰머리로

등장한 덕에 어머니를 설득해 염색을 그만두자

살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이 블로그에 그 점에서

강 장관에게 깊이 감사한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지금 저는 긴 흰머리를 대충 모아 올리고

생활하는데, 새벽이나 밤에 기온이 내려갈 땐

커튼 내리듯 풀어둡니다. 그러면 머리칼이 목덜미를

덮어 제법 따뜻하니까요.

 

아들의 머리 또한 제 머리만큼이나 긴데 주로

꽁지머리로 묶고 지냅니다. 아들도 보온이

필요할 땐 머리를 풀지 모릅니다.

 

아들의 머리는 자꾸 제 것을 닮아가지만

염색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노화의 결과든

노고의 결과든, 흰머리를 감추려 하는 대신

흰머릿값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들과 저로 인해 흰머리가 멋있는 사람의 징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