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 11

노년일기85: 까치집처럼 살려 했는데 (2021년 7월 30일)

까치집처럼 살려 했는데 더위도 추위도 담아두지 않고 비와 바람도 다만 흐르게 하는 까치집처럼 살려 했는데 주름 늘어가는 몸집에 더위가 들어앉아 주인 노릇을 하니 사지는 절인 배추꼴이 되고 정신은 젖은 손수건처럼 제 할 일을 못하여 에고 칠월은 낭비로구나 한 뼘도 자라지 못하고 한 낱도 영글지 못했구나 탄식 중에 화분 사이를 거닐다 깜짝! 오월 초에 피었던 재스민 활짝 핀 보라 여섯 송이 음전한 봉오리 하나 처음 겪는 더위는 마찬가진데 내겐 낭비인 칠월이 재스민에겐 부활이로구나 나의 각성은 늘 부끄러움이구나

나의 이야기 2021.07.30

새벽 배송 수수께끼 (2021년 7월 27일)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현관문을 여니 커다란 골판지 상자가 와 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받아보는 '새벽 배송' 선물입니다. 제 힘으론 들일 수 없어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상자 얼굴의 글씨를 읽습니다. '부드러운 복숭아'입니다. 상자를 열지 않아도 복숭아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것 같습니다. 과대 포장이라면 질색하는 저를 위해 포장이 단순하되 신선한 복숭아를 찾아 보낸 수양딸... 저는 무엇을 했기에 혹은 무엇을 하지 않았기에 이런 홍복을 누리게 된 걸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자리에 머무는 새벽을 뚫고 저희 집 앞을 다녀간 사람... 그이에게도 감사합니다. 그이의 하루가 너무 고단하지 않기를, 그이가 너무 늦지 않은 밤 피곤한 몸을 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고보니 땀이 제 온몸을 적셔 잠자리에서 ..

동행 2021.07.27

'2020 올림픽' 개회식과 MBC TV (2021년 7월 25일)

우여곡절 끝에 일본 도쿄에서 '2020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2020년에 열리기로 되어 있던 올림픽이 2021년 한여름에 열린다는 사실이, 이 '지구촌 축제'를 둘러싼 복잡한 사정을 보여줍니다. 지상파 3사와 몇몇 케이블 채널에서 경기를 생중계하거나 녹화했다 보여주는데, 가능한 한 MBC는 보지 않으려 합니다. 지난 23일 저녁에 열린 개회식을 중계할 때 MBC가 보인 태도 때문입니다. 당시 KBS, SBS, MBC 3사는 개회식을 생중계하며 각 나라의 대표단이 입장하면 그 나라와 대표단에 대한 소개를 자막으로 곁들였습니다. 국토의 크기와 수도, 인구, 참가 종목과 선수 등 기본적인 정보라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유독 MBC는 그 정보에 각 나라의 GDP를 표기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올림픽의 의..

동행 2021.07.25

아, BTS! (2021년 7월 23일)

아이돌 음악을 즐기진 않지만 BTS는 좋아하고, 아이돌을 꿈꾸는 소년들과 청년들이 경연을 벌이는 SBS 프로그램 '라우드(LOUD)'도 좋아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최선을 다해 그것을 하며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에 기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들에게 저 자신을 비춰봅니다. 나도 그들처럼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지... BTS와 LOUD를 보면 K-pop이 앞으로도 한동안은 세계의 음악으로 군림할 것 같습니다. BTS가 최근에 내놓은 '퍼미션 투 댄스 (Permission to Dance)'는 그런 예상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입니다. BTS는 그 곡에 맞추어 수어를 이용한 안무를 선보였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이와 관련해 트위터에 BTS를 찬양했다고 합니다. ..

동행 2021.07.23

노년일기 84: 노년의 적들 (2021년 7월 19일)

아흔둘 어머니는 그대로 스승입니다. 칭찬은 박하고 비판은 후하던 어머니의 성격은 여전하시지만 그때 '엄만 왜 저럴까?' 하며 속상해하던 저는 이제 저 부분은 유전자, 저 부분은 자신감, 저 부분은 열등감의 소산이구나, 분석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어머니가 무심코 던진 말에 잠시 불쾌할 때는 있지만 오래가는 상처를 받는 일은 드뭅니다. 그런 말은 어머니가 극복하지 못한 문제를 드러낼뿐이니까요. 그렇지만 어머니의 문제는 늘 제게 질문을 던집니다. 어머니의 문제가 저것이라면 나의 문제는 무엇일까? 저런 것이 어머니의 성숙을 방해한다면 나의 성숙을 방해하는 오래된 적들은 무엇일까... 그러니 어머니가 무엇을 하든 어머니는 제 스승인 거지요. 요즘 어머니가 가장 많이 일깨워주시는 건 외로움입니다. 저는 홀로 있는 ..

나의 이야기 2021.07.19

문화체육관광부의 '하안거' (2021년 7월 15일)

더위는 늘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는 여름의 더위는 그 이상입니다. 올 여름 더위는 사람을 시험하는 더위, 실수를 유발하는 더위입니다. 이럴 때는 가능한 한 천천히 결정하고 실천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8일 홈페이지에 ‘쇠퇴하는 일본, 선진국 격상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카드 뉴스를 게시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국뽕’ 단체나 중학생 단체 정도가 게시할 만한 선정적이고 유치한 제목의 글입니다. ‘외교 결례’라는 지적을 받고 수정했다는데, 이건 ‘결례’가 아니고 ‘망신’입니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지만 정신은 ‘졸부’ 수준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니까요. 문체부가 국민의 더위를 가중시키는 건 이뿐만이 아닙니다. ..

동행 2021.07.15

매미와 '프링젠: Fringen (2021년 7월 13일)

그제 저녁 잠깐 매미 소리를 들으니 참 반가웠습니다. 어제 저녁에도 잠깐 매미 소리가 들렸습니다. 두 소리 모두 '매앰 맴'은 아니었지만 매미 소리가 틀림없었습니다. 울음소리가 달라도 좋으니 오늘 저녁에 또 매미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동네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동네에선 대개 7월 10일쯤 매미가 울곤 했습니다. 때로는 첫 울음소리가 며칠 늦게 들리기도 했지만, 일단 울음이 시작되면 그날부터는 계속 들렸습니다. 그런데 올여름은 이상합니다. 아주 잠깐 단말마 같은 울음소리가 들리고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매미도 기상 이변으로 인한 변화와 고통을 겪고 있는 걸까요?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한 기후와 생태계의 변화를 매미도 겪나 봅니다. 혹시 날씨를 관장하는 신이 매미 울음을 그리워하는 인간들을 벌 주기 위해 ..

동행 2021.07.13

노년일기 83: 가난을 기록하는 일 (2021년 7월 10일)

'적당한 가난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블로그나 책에 저의 '가난'을 기록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의 '가난'은 집을 소유한 자의 가난이니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정말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배부른 자의 고민입니다. 저의 가난은 공과금이나 관리비를 낼 돈이 통장에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낼 때 내고 싶은 만큼에서 조금 덜어내야만 하는 가난입니다. 가난 때문에 맛있지만 비싼 커피를 절제한 적도 많았지만 그런 얘기를 이 블로그에 쓴 후로는 마음껏 마시고 있습니다. 수양딸이 그 커피를 파는 카페에 거금을 선결제해주는 덕택입니다. 힘들게 번 돈으로 커피를 사주는 수양딸에게 늘 미안과 감사를 느끼며 가난을 기록하지 말아야겠다..

나의 이야기 2021.07.10

노년일기 82: 쌀 (2021년 7월 7일)

어제 저녁밥을 끝으로 쌀이 똑 떨어졌습니다. 하루에 한끼는 밥을 먹으니 오늘 중에 쌀을 사야 합니다. 식구가 적어 많이 산다고 해도 10킬로그램 한 봉입니다. 우편함에 새로 생긴 마트의 홍보 전단지가 있기에 보니 10kg짜리 쌀을 시중보다 훨씬 싸게 판다고 나와 있습니다. 아, 나는 역시 운이 좋구나 생각했습니다. 9시에 마트 영업이 시작된다기에 9시 10분쯤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서 마트까지는 차로 5분 거리입니다. 얼른 쌀을 사다 놓고 할 일을 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마트에 가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들어가긴 했는데 상품대 사이마다 사람이 가득하여 정신이 자꾸 아득해졌습니다. 싼 것도 좋지만 쓰러질 것 같아 밖으로 나갔습니다. 주차장이 없어 주변을..

나의 이야기 2021.07.07

'교양서'와 '교양 강좌'의 팩트 체크 (2021년 7월 4일)

텔레비전에서 스타 강사의 '교양 강좌'를 보거나 주변에서 추천하는 베스트셀러를 보고 실망하거나 분노할 때가 있습니다. 틀린 '팩트'를 사실인 것처럼 얘기하거나, 다섯 가지를 얘기해야 하는데 한두 가지만 얘기해서 진실을 호도하고 자신의 논리에 맞게 재단하는 걸 보면 화가 나지만, 방송국에 전화해서 문제를 삼는 대신 채널을 돌립니다. 최근에는 어떤 고명한 사람의 책과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소개받고 읽었다가 아주 큰 분노를 느꼈습니다. 첫 번째 책은 한마디로 '꼰대의 꼰대를 위한 꼰대짓'의 결과물이었고 두 번째 책은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의 전형적 예였습니다. 그런데도 제겐 그 책들과 저자를 밝힐 용기가 없습니다. 공적 사적으로 얽힌 관계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제가 비굴한 독..

동행 2021.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