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978

노년일기 204: 인생을 다시 산다면 (2023년 12월 31일)

2023년의 마지막 날. 다 잤다는 기분이 들어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 어젯밤 11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으니 좀 더 자야할 거야 생각하며 누워 있었지만 떠난 잠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상승은 드물고 낙하는 풍성했던 일년. 중력이 있는 지구에선 떨어지는 게 당연하겠지만 한 번쯤은 중력을 이기고 싶었는데 ... 그래도 사랑 많은 한 해였습니다. 아는 사람들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늘 기도하며, 지혜와 용기가 그들과 함께하기를 빌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친구들은 선물과 다정한 말로 격려해 주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친절로 위로해 주었습니다. 다시 새 달력을 걸며 자문합니다. 지나간 일년을 다시 산다면, 아니 지나간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르게 살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책상에 앉아 책을 읽던 시..

나의 이야기 2023.12.31

노년일기 203: 생애가 끝나갈 때 (2023년 12월 29일)

아침 기도 시간에도 낮에 산책을 하다가도 눈시울이 젖습니다. 생애의 끝 언저리에서 한 해의 끝을 맞는 분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물 찬 제비 같던 어머니가 갑자기 거동을 못하게 되시고, 얼마 전만 해도 새로 나가는 데이케어센터가 재미있다고 밝게 웃으시던 이모가 요양병원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선균 씨처럼 떠나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태어나서 1세기 안팎의 시간을 산 뒤에 삶이 죽음으로 치환되는 시간을 거쳐 마침내 죽음과 만납니다.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육체에서 시작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미 죽음의 과정이 시작된 후에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 과정을 대비하고 준비하는 건 삶이 한창일 때만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이겠지요. 삶이 한창일 때부터 감사..

동행 2023.12.29

노년일기 202: 우리는 살아있다 (2023년 12월 26일)

2023년의 마지막 달이 바쁘게 지나갑니다. 수많은 실패를 묻느라 마음이 바쁘지만 지나가는 해의 실패는 새해의 거름이 되겠지요. 몇 달 후면 94세가 되실 어머니는 자꾸 침묵에 빠져드시니, 앞서 가신 아버지와의 해후가 멀지 않은가 봅니다. 뵌 지 한참된 선배님이 소식을 주시고 만난 지 오랜 후배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옵니다. 수양딸들은 가족들을 돌보느라 바쁘면서도 안부를 묻고, 아들은 악조건과 싸우면서도 늙은 부모를 챙깁니다. 가난은 부끄럽지 않지만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선물하지 못하니 자괴감이 드는데 친구들이 말해 줍니다. '네가 있어 감사해'라고. 올해도 참 많은 사람들이 동행을 그쳤지만 우리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나 봅니다. 아직 갚아야 할 사랑이 많은가 봅니다.

나의 이야기 2023.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