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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일기 206: 재활용 어려움 (2024년 1월 11일)

선물받은 수분크림을 다 썼습니다. 빈 통을 재활용품 수거함에 넣으려다 보니 통 표면에 통은 PET, 뚜껑은 Other라고 표기되어 있고 Other 아래에 '재활용 어려움'이라고 써 있습니다. 며칠 전 선물받은 다른 수분크림을 꺼내 봅니다. 통은 플라스틱, 뚜껑은 PP '재활용 우수'라고 써 있습니다. 혹시 사서 쓰게 된다면 이 제품을 써야겠습니다. 병원에 드나들며 고령의 환자들을 많이 보아서 일까요? 전 같으면 공분을 일으켰을 '재활용 어려움'이 어머니 병실의 노인들을 상기시켜 슬픔을 일으킵니다. 우리 어머니를 비롯해 그 방의 모든 분들은 각자 타고난 능력은 물론 타고나지 못한 능력까지 동원하며 죽어라 살아내신 후에 지금에 이르렀을 겁니다. 언젠간 내 몸도 재활용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

동행 2024.01.11

이영애 씨에게 (2024년 1월 9일)

저는 배우 이영애 씨를 좋아합니다. 그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이름에 걸맞게 처신합니다. 이 나라에 이영애 씨 같은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어머니가 누워 계신 방엔 세 분의 고령 환자들이 계십니다. 혼자서는 거동이 불가능한 분들입니다. 오후 세 시가 되도록 어머니 곁에 붙어 있다 잠시 병실 근처 휴게 공간에서 때늦은 점심을 먹는데, '아퍼? 어디가 아퍼!' 잘못한 아이를 야단치는 듯한 큰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 병실로 달려가니 4, 50대로 보이는 간호사가 젊은 동료를 옆에 두고 아흔넷 어머니에게 반말로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청력이 나빠 못 들으실까봐 큰소리쳤겠지 하고 이해한다 해도 반말은 용서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엔 기가 막혀 명찰을 볼 생각도 못했는데 나중에 다시 ..

동행 2024.01.09

노년일기 205: 지금, 준비 중입니다 (2024년 1월 7일)

나이 든 사람들은 종종 얘기합니다. '자다가, 고통 없이 죽고 싶어' 라고. 누군가 자다가 죽었다는 얘기를 가끔 듣지만 그가 고통도 없이 죽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고통이 있었다 해도 몇 시간의 고통이었을 테니 부러움을 살 만합니다. 그 고통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생(生)과 사(死)를 잇는 다리 위에 계시는 듯한 어머니를 보며 살아가는 일과 죽어가는 일을 생각합니다. 사고사나 자살이 아닌 한 죽음도 삶처럼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입니다. 삶의 과정과 죽음의 과정이 결정되는 건 언제일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삶의 과정은 대개 10대 초반에 결정되고, 죽음의 과정은 65세 전후에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15세쯤 어렴풋하게나마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구나 깨닫고 그것을 좇아 살다가 65..

나의 이야기 2024.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