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수능이 끝난 후 (2012년 11월 11일)

divicom 2012. 11. 11. 11:03

오늘 TBS '즐거운 산책' 시간에는 정희성 선생의 시 옹기전에서’를 읽어드렸습니다. 이 시는 1981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13인신작시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능은 끝났지만 수험생들과 부모님들은 아직 그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수능 성적에 따라 갈 수 있는 대학이 정해진다는 거지요.


평생 시험을 치르고 그 후유증을 앓느라 삶을 소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험을 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잘 치길 바라지만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인생을 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제 삶을 돌아보아 제일 잘 된 일은 처음 치른 대학 입학시험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실수와 실패가 없는 사람은 남들에게 가혹하고 사소한 잘못도 쉬이 용서할 줄 모릅니다. 실수하고 실패하는 사람, 그 실수와 실패에서 배우며 자신을 키우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큰 사람'이 됩니다. 

 


옹기전에서

 

나는 왠지 잘 빚어진 항아리보다

좀 실수를 한 듯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내를 따라와 옹기를 고르면서

늘 느끼는 일이지만

몸소 질그릇을 굽는다는

옹기점 주인의 모습에도

어딘가 좀 빈 데가 있어

그것이 그렇게 넉넉해 보였다

내가 골라놓은 질그릇을 보고

아내는 곧잘 화를 내지만

뒷전을 돌아보면

그가 그냥 투박하게 웃고 섰다

가끔 생각해 보곤 하는데

나는 어딘가 좀 모자라는 놈인가 싶다

질그릇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실수한 것보다는 차라리

실패한 것을 택하니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 보면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시인들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위의 시를 쓴 정희성 시인은 실망스럽지 않았습니다. 오래 전에 한 번 뵙고 이 시인은 자기 시와 꼭 같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희성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