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나는 왜 (2012년 6월 2일)

divicom 2012. 6. 2. 23:44

오늘 아침 교통방송 '즐거운 산책'에서는 박상천 시인의 시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를

읽어드렸습니다. 같은 제목의 시집에 실려 있습니다.

 

이 세상엔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주인은 우리, 우리만이 우리를 불안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시야가 좁은 사람은 제 집 안에서도 불안하고 시야가 넓은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저라면 이 제목보다 시의 각 연 머리에 나오는 '나는 왜'를 시의 제목으로 했을 것 같습니다. 한 번 읽어보시지요.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나는 왜,

앞에 가는 자동차 번호판 숫자를

바꾸고 싶을까

5679는 5678이나 4567로 순서를 맞추고 싶고

3646은 3636으로, 7442는 7447로 짝을 맞추고 싶을까

5679, 3646, 7442는 나를 불안케 한다.

 

나는 왜,

카세트 테이프는 맨 앞으로 돌려서 처음부터 들어야 하고

삐긋이 열린 장롱문은 꼬옥 닫아야 하고

주차할 때 핸들은 똑바로 해두어야 하고

손톱은 하얀 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바짝 깎아야 할까

테이프와 장롱문과 핸들과 손톱이 나를 불안케 한다.

 

나는 왜,

시계는 1분쯤 빨리 맞추어 두고

컴퓨터의 백업 파일은 2개씩 만들어 두고

식당에서는 젓가락을 꼭 접시 위에 얹어 두어야 하고

손을 씻을 때면 비눗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손을

헹구어야 할까

시계와 컴퓨터와 젓가락과 비누가 나를 불안케 한다

 

그래도 나는,

나를 불안케 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