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교통방송 '즐거운 산책'에서는 버스 얘기를 하며 정복여 시인의 시 '길 위에 문'을 읽어드렸습니다. 버스를 타고 서울 거리를 다니다보면 가끔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저 크고 작은 공간마다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과 식물과 동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길 위에 문' 정 시인의 감수성이 반짝이는 시집 ‘먼지는 무슨 힘으로 뭉쳐지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길 위에 문
방금 정류장을 지나온 버스가
슬레이트 지붕의 철공소를 보고 있다
철제 문짝들이 즐비하다
기름때로 얼룩진 얼굴이 문을 만들고 있다
철판에 벽돌색 스프레이를 뿌리면
주위는 적색 안개로 자욱하다
손잡이가 달릴 부분이 둥글게 뚫려 있다
둥근 구멍 저쪽에 보이는 공기들 혹은 빛들
그것들이 바쁘게 뛰어오른다
어딘가로 가서 열리고 닫힐 문들이
지금 일렬횡대로 만들어지고 있다
저기 문 안으로 들어가는 장미꽃
저기 문 안으로 들어가는 야구모자
저기 문 안으로 들어가는 등 굽은 스웨터,
문 밖을 오고 가는 길 위의 발들을 세는데
버스는 신호를 받아 출발한다
횡단보도를 지나는 둥근 손잡이들
덜컹, 또 다른 문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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