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다시 꽃에게 (2011년 8월 31일)

divicom 2011. 8. 31. 11:16

8월이 땡볕 아래 누워 죽음을 기다립니다. 달빛 속에서 다비식이 거행되고 나면 마침내 흔적없이 사라지겠지요. 그러나 사라지는 것은 꼭 일년 뿐입니다. 저 창가에서 피었다 지고 다시 피었다 지는 잉크빛 아메리칸 블루처럼 지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끝은 아닙니다. 꽃을 보다가 정끝별의 시 '꽃이 피는 시간'을 읽습니다. 2008년 소월시문학상 작품집에서 인용합니다.

 

 

꽃이 피는 시간

 

가던 길 멈추고 꽃핀다

잊거나 되돌아갈 수 없을 때

한 꽃 품어 꽃핀다

 

...(중략)

 

나보다 빨리 피는 꽃은 옛날이고

나보다 늦게 피는 꽃은 내일이다

배를 땅에 묻고 아래서 위로

움푹한 배처럼 안에서 밖으로

꼬르륵 제 딴의 한소끔 밥꽃을

백기처럼 들어올렸다 내리는 일이란

단지 가깝거나 무겁고

다만 짧거나 어둡다

담대한 꽃 냄새

방금 꽃핀 저 꽃 아직 뜨겁다

피는 꽃이다!

이제 피었으니

가던 길 마저 갈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