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과 싸우면서도 연구를 하고 집필을 하는 훌륭한 분들이 적지 않지만 저는 고작 감기를 핑계삼아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그나마 열이 아주 높을 땐 절인 배추처럼 얌전했는데 열이 조금 내리자 사소한 일에도 자꾸 짜증이 났습니다. 짜증을 내기도 하고 참기도 하다 보니 그러는 자신이 참 한심했습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이 정도 불편도 견디질 못해 마음의 평정이 깨어지다니... 헛 살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겨레 신문에서 아흔세 살의 파이터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씨를 만났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나치와 싸웠던 에셀씨가 지난 해 10월에 <Indignez vous!>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겨우 3개월만에 60만부나 팔렸다고 합니다. 불어 제목은 <앵디녜부!>로 읽는데 영어로 하면 <Cry out!>, 우리말로 하면 <분노하라!>라고 합니다.
전체 30쪽, 광고문구와 주석을 제외한 본문은 13쪽에 불과한 이 책에서 에셀씨는 프랑스인들과 전 세계인에게 나치에 저항했던 정신을 되살려 돈과 시장의 무례하고 이기적인 권력을 거부하고 민주주의의 사회적 가치를 수호하자고 촉구합니다. "분노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귀중한 선물이며, 분노할 것에 분노할 때 당신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의 일부가 된다. 그 흐름이 우리를 더 많은 정의와 자유로 이끈다. 그 자유는 여우가 닭장 속에서나 맘껏 누리는 자유가 아니다."
에셀씨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혼자 부끄러웠습니다. 하루하루가 그대로 도전일 93세에도 이렇게 붉은 목소리로 정의와 저항을 부르짖는 분이 있는데, 나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위에 인용된 구절에 몇 구절을 보태어 아래에 옮겨두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인용구는 영국일간지 인디펜던트(Independent)의 3일자에서 따온 것이라 불어가 아닌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인용구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빨간 색으로 표시했습니다.
A message of resistance
* "I would like everyone – everyone of us – to find his or her own reason to cry out. That is a precious gift. When something makes you want to cry out, as I cried out against Nazism, you become a militant, tough and committed. You become part of the great stream of history ... and this stream leads us towards more justice and more freedom but not the uncontrolled freedom of the fox in the hen-house."
* "It's true that reasons to cry out can seem less obvious today. The world appears too complex. But in this world, there are things we should not tolerate... I say to the young, look around you a little and you will find them. The worst of all attitudes is indifference..."
* "The productivist obsession of the West has plunged the world into a crisis which can only be resolved by a radical shift away from the 'ever more', in the world of finance but also in science and technology. It is high time that ethics, justice and a sustainable balance prevai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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