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인권과 인권위

divicom 2010. 12. 10. 16:14

오늘은 ‘세계 인권의 날’입니다. 1948년 ‘세계 인권선언문’이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다른 나라들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날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문제는 그 행사들이 인권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보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파행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인권위가 주최한 청소년 대상 인권에세이 공모전에서 대상 수상자로 뽑힌 영복여고 3학년 김은총 양은 “현병철 위원장의 인권위는 상을 줄 자격이 없다”며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김 양은 자신이 “에세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인권’을 현 위원장이 끝도 없이 추락시키고 있다”며 “인권위는 직접 선정한 수상작들에서 이야기하는 인권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제대로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또 위원장이 사퇴를 촉구하는 인권위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인권에 대해 제대로 된 개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없을 말들을 하는 것을 보며, 나와 나머지 수상자들에게 상을 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상을 거부한 건 김 양만이 아닙니다. 위원장 표창을 받을 예정이던 ‘이주노동자 방송’(MWTV)도 “인권위가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이 단체는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할 인권위가 정부의 하위 기관으로 전락해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있다”며 인권위는 ‘국가 인권기구’로서의 입지를 포기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올해 인권영상공모전에서 ‘선철규의 자립이야기-지렁이 꿈틀’로 대상을 받게 된 선철규 씨도 “다른 인권활동가들과 싸우는 위원회가 주는 상을 받을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인권위가 서울 시내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세계 인권선언 62주년 기념식을 하는 동안 인권운동가 50여 명은 인권위 앞에서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인권 시민단체인 인권단체연석회의가 인권활동가 93명의 의견을 취합해 선정한 ‘2010년 10대 인권뉴스’를 보면 현재 우리나라 인권 상황이 보입니다.

 

'현병철 인권위원장 임기 1년 만에 찾아온 위기와 사퇴운동' '동성애 혐오의 조직화와 확산' '삼성 반도체 노동자 박지연 씨 사망' '끝나지 않는 용산…용산참사 철거민' '학생체벌금지 내용 담은 학생인권조례, 경기도의회 본회의 통과' 'G20을 명분으로 한 인권 후퇴' '높아지는 불법파견과 간접고용 철폐의 목소리' '환경운동가들 4대강 사업 중단 요구하며 고공 농성' '집시법 10조 소멸로 야간집회 가능' '조현오 경찰청장 임명…경찰청은 음향대포 도입.'

 

인권단체연석회의를 포함한 전국 220여 단체로 구성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인권시민단체 대책회의'는 지난 달 16일 청와대 부근 청운동 주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인사권 행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당시 대책회의는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김영혜 변호사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적이 없고 ‘인권위 독립성을 부정하는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어 부적합하다’며, 정부가 “현병철 위원장에 이어 김영혜 변호사까지 인권 현장 활동이 전혀 없는 인물을 연이어 추천하는 것은 국가인권기구의 역할과 인권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인권위 상임위원은 차관급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추천 몫으로 임명된 유남영 전 위원과 문경란 전 상임위원(한나라당 추천)이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조직 운영에 항의하며 동반 사퇴한 지 보름 만에 김영혜 변호사가 이명박 대통령 추천 몫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인권위의 파행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켰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달 말  "주요 인권 문제에 대한 인권위의 침묵과 인권위원·전문가 사퇴, 정치적 의도에 따른 상임위원 임명, 인권위 운영규칙 개정안 제출 등으로 인권위의 독립성과 권위가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김영혜, 홍진표 상임위원의 임명과 추천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인권 상황을 비롯해 지금 우리나라엔 걱정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건 누구나 좋아하는 '상'까지 거부하며 양심에 따라 사는 '동행'들 덕택입니다. 김은총, 선철규, 그리고 모든 용기있는 분들, 그분들께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