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진중권의 은유 (2011년 1월 18일)

divicom 2011. 1. 18. 12:17

아침 신문을 읽다가 웃음을 터뜨리기는 참 오랜만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오래 계산하되 틀린 방책만을 내놓는 정부 덕에 건성건성 신문을 보되 화 내지 않으려 애쓰는 나날이었는데... 왜 웃었느냐고요? 미학자이자 문화평론가인 진중권씨 덕택입니다. 그가 오늘자 한겨레신문 30면 '야! 한국사회'라는 칼럼에 쓴 '보온 안상수 뎐' 때문입니다. 제가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라면 이 글을 잘 오려내어 액자에 넣어 두고두고 가보로 물려주겠습니다.

 

"호(號)는 '보온(保溫), 자(字)는 '행불'(行不), 출(出)은 '자연산'(自然産).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안상수 선생의 간략한 신상이다. 그의 덕을 흠모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액수만'(厄手滿)이라는 별칭으로도 통했다. '보온'이란 호는 경인년(庚寅年) 11월의 연평도 행차에서 유래한다. '오브제 트루베' 기법을 도입한 이 전설적 공연에서, 선생은 길에서 주운 보온병을 '포탄'이라 일컬었다. 그 이름을 불러주자, 뒤샹에게 변기가 그러했듯이, 보온병은 선생에게 의미가 됐다. 이 일에 감동한 백성들은 <이것은 보온병이 아니다>라는 그림을 그려 오마주로 바쳤으니, 선생의 정신이 마그리트와 교감하고 있음은 이로써 증명된다..."

 

여기까지 읽다보면 누구라도 겨우내 찡그렸던 얼굴에 웃음을 띠게 될 것입니다. 지난 해 11월 23일 연평도가 북한의 포격을 받은 후 그곳을 찾은 안상수씨가 그을린 보온병을 들고 이것이 포탄이라고 하여 국민의 냉소와 분노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한 달 후에는 여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성형하지 않은 여성을 '자연산'이라고 표현, 또 다시 천격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안씨는 '행방불명'을 이유로 군 징집을 피했다고 합니다. 진중권씨는 이 모든 것을 '호' '자' '출' 세 가지로 간단히 정리한 것입니다. 

 

'오브제 트루베(objet trouve)'는 프랑스어로 '발견된 물건' 혹은 '이미 만들어진 예술품'이라는 뜻입니다. 예술품이 아닌 평범한 물건이 어떤 예술가에 의해 예술품이 되는 것이지요. 아시다시피 20세기 초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기수였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에 의해 창안된 용어로, 그가 1917년 '변기'를 '분수'로 변모시킨 것은 유명한 일입니다. 

 

진중권씨는 또 "이 일에 감동한 백성들은 <이것은 보온병이 아니다>라는 그림을 그려 오마주로 바쳤으니, 선생의 정신이 마그리트와 교감하고 있음은 이로써 증명된다"고 쓰고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마그리트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입니다. 그는 1920년대 말에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 The Treachery of Images)>이라는 작품에 담배 파이프를 그려넣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놓았습니다. 진중권씨는 그것을 빗대어 얘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진중권씨의 칼럼에는 안상수 '선생'이 '부당한 비난'을 받았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부당한 비난도 받았다. 여성이 '자연산'이라 함은 인간이 자연과 구별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 역시 자연에 속한다는 투철한 생태주의 의식의 발로다. '룸'이라는 말을 시비하기도 하나, 이 역시 '내재적 관점'을 모르는 자문화중심주의의 폭력일 뿐이다. 선생이 적을 둔 한나라당에서는 룸살롱을 보존, 계승, 발전시켜야 할 '(밤)문화'로 여긴다는 문화적 상대성을 고려한다면, 이 역시 딱히 시비할 일은 아니리라."

 

좋은 칼럼이란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 또는 정보를 주고(informative), 재미있으며 (entertaining), 깨달음을 주어야(enlightening)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칼럼을 쓰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칼럼니스트들 중에는 세 가지 조건 중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사람도 드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중권씨와 같은 지식인이 칼럼을 쓴다는 건 참으로 고맙고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를 비난하고 평하하는 사람들이 그이 만큼 공부를 하고 그이처럼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진중권씨 덕에 우리가 오래 잊고 지낸 풍자와 은유의 전통이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중권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