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칼럼(삶의 창)

투제체! 달라이 라마 (2008년 3월 21일)

divicom 2009. 11. 2. 07:46
텔레비전 뉴스와 신문 보기가 무섭다 싶으면 결국 앓게 된다. 혜진이와 예슬이, 네 모녀 살해 사건에 이어 티베트 사태까지, 새 잎 돋고 꽃 피어도 봄은 오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몸을 이루는 모든 조각들이 아프다. “삶의 뿌리가 고(苦)”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이 떠오른다.

고열로 지글대는 머리통을 받쳐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달라이 라마의 공식 웹사이트에 들어가 본다. 황금색 바탕에 떠 있는 보라색 직사각형 속에 특유의 미소를 짓고 있는 달라이 라마, 그 위에 그의 가사와 같은 어두운 붉은 색 문장이 티베트어, 영어 등, 네 개 언어로 번갈아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산티데바라는 인도의 불교 시인이 쓴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에서 따온 구절이다.

 

20여년간 달라이 라마의 보좌로 수행해온 한국인 승려 청전 스님에 따르면 “허공계가 다하고 단 한 명의 중생이 남아 있는 한 저는 이 세상에 머물면서 중생의 고통을 없애는 자로 남겠습니다”라는 뜻의 기도문이라고 한다. 달라이 라마가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고 행한 연설의 말미를 장식하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를 친견한 바 있는 작가 정희재의 티베트와 인도 순례기,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에는 ‘달라이 라마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법회에서 산티데바의 <입보리행론>을 읽다가 “내가 고통받음으로써 일체중생의 고통이 모두 사라지게 해주소서”라는 대목에서 눈물을 훔치던 달라이 라마 얘기다.

 

티베트나 인도에 가본 적도 없고 티베트 불교에 대해 아는 것도 없지만, 달라이 라마의 사랑과 자비심에 대해서만은 끝없는 경외를 품고 있다. 영어로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을 하다가 티베트 사람들에게 모국어로 당부하던 걸 뒤늦게 읽고 느꼈던 놀라움 같은 것이다. “중국에 점령되어 힘들게 살아가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 중국 사람들을 미워하지 마시고 어떤 물리적 가해로 피해를 주지 마시길 당부합니다. 중국 사람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끝까지 자비심으로 인욕하면서 먼 훗날 다시 모여 함께 살 때까지 부처님 법에 따른 삶을 살아가기를 거듭 당부합니다.”

 

이런 자비심의 소유자이니 폭력 사태가 악화되면 사퇴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게 당연하지만, 피끓는 티베트 젊은이들이 좌절감을 느끼며 반발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무엇보다 그들은 1960년 3월10일, 인도의 다람살라로 망명을 떠나며 달라이 라마가 했던 연설을 기억하기엔 너무 젊다.

 

“나는 우리가 티베트의 상황을 긴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는 걸 강조합니다. … 우리는 정착하여 문화적 전통을 유지, 계승하는 걸 우선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해서는, 우리 티베트인들이 진리와 정의와 용기라는 무기로써 마침내 티베트의 자유를 다시 찾으리라는 제 믿음을 말씀드립니다.” 진리, 정의, 용기! 우리 대부분은 이제 이 무기를 잃었으나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무기가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티베트의 힘은 중국이라는 크고도 작은 나라와 무력으로 맞서는 데 있지 않고 사랑 속에 있다. 부디 달라이 라마가 원하는 방식으로 티베트의 자치권이 확보되어, ‘신의 땅’ 라싸가 사랑을 배우러 오는 세계인들로 붐빌 날을 기다린다. 달라이 라마가 초청을 받고도 가보지 못한 나라는 한국뿐이라는데 그래도 이곳 상황은 훤히 아시나 보다. 청전 스님에게 “당신 나라는 첨단의 나라여서 ‘고’와 ‘무상’을 생각할 틈이 없으니, 거기에 보리심을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니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달라이 라마, 고맙습니다. 투제체! 문득 머리가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