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칼럼(삶의 창)

젊은이의 편지 (2008년 4월 11일)

divicom 2009. 11. 2. 07:49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실망하여 이민을 가고 싶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이민 수속을 밟던 때가 떠오른다. 그러나 모국은 낙인, 어디에 간들 자유로워지겠는가. 의지의 낙관에 기대어 주저앉고 말았었다. 때맞춰 날아든 편지 한 통, 실망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몇 달 동안 씨름해 온 일이 끝난 날, 오랜만에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정장을 입고 외출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더욱 기분이 좋았습니다. 일이 잘되면 좋은 옷을 사드려야지, 마음먹었습니다. 작업 결과물을 영등포의 공방에 갖다 준 후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습니다.

 

한낮인데도 사람이 많았습니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서니 승객들 사이를 오가는 작은 여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그라든 것 같은 몸집에 흰머리가 드문드문한 머리칼을 대충 묶은 뒷모습, 분명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앉은 사람들에게 코팅된 종이를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종이 맨 위쪽엔 복사한 신분증 같은 게 있고 그 아래에 초등학생 글씨로 쓴 사연이 보였습니다. 한쪽 눈은 실명했고 나머지 눈의 시력도 사라지는 중이며, 오른손은 절단이 되었다고, 게다가 아이도 엄마와 같은 시각장애를 앓고 있다고.

 

그때 신분증에 찍힌 540709가 보였습니다 …. 그 숫자는 분명 그분이 저희 어머니보다 꼭 한 달 하루 먼저 태어났음을 뜻했습니다. 미소를 띠고 문을 나서던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할머니는커녕 아주머니라고 부르기도 미안하게 활기찬 모습이었습니다. 겨우 한 달 하루의 시차를 두고 태어난 두 사람의 인생이 왜, 언제, 어디서부터 달라진 걸까요? 태어날 때부터일까요? 두 사람의 삶을 다르게 만든 게 운명이라면 도대체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아무도 여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여인은 무감하게 종이를 거두며 움직였습니다. 여인이 사람들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될 때야 상념에서 깨어나 뒤를 쫓아갔습니다. 어깨에 손을 얹자 돌아선 여인, 뒷모습은 할머니였지만 얼굴은 어머니 또래였습니다. 연두 빛이 도는 한쪽 눈. 희미한 다른쪽 눈. 아예 손가락이 없는 한쪽 손. 그러나 제 주머니엔 2천원뿐이었습니다.

 

지상은 봄볕을 즐기는 대학생들의 웃음소리로 명랑했지만, 제 마음은 지하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인과 아이가 때맞춰 치료를 받았다면? 손가락을 잃었다 해도 재활 훈련을 받고 보조기를 쓰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결국 그들을 돕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본 고위 공직자 재산 내역이 떠올랐습니다. 3조6천억원을 가진 정몽준 의원이 1등, 태안군수인가 누군가가 258억원으로 2위였습니다. 그 부자들은 알고 있을까요? 그렇게 피폐한 삶을 사는 동시대인들이 있다는 걸? 자신들에게 고여 있는 재산으로 누군가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 고작 2천원을 건네고 내린 제가 너무도 싫습니다. 도대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있을까요?”

 

편지는 거기서 끝났지만 행간에 배인 한숨이 가슴을 답답하게 해, 여러 번 심호흡을 한 후에야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모든 문제는 답을 품고 있으며 그대 같은 이가 있는 한 희망이 있다고, 언제 어디서나 그 여인을 발견한 눈과 이 편지를 쓰게 한 마음을 잃지 말라고, 책을 읽으라고,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데 독서보다 좋은 처방은 없다고, 비관은 보수주의자들의 것이라는 미셸 투르니에의 말을 기억하고 “인간의 무한한 완결 가능성과 즐거운 미래”를 믿으라고, 역사의 진보를 믿는 자에게 낙관은 숙명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