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꿈이 깨달음을 줄 때가 있습니다.
엊그제 꿈은 죽음은 나눌 수 없는 것이며
죽는 사람, 오로지 그 한 사람의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의 기간, 죽음의
방식 또한 그 사람만의 것입니다. 죽음은 삶을
채운 상자의 뚜껑을 닫는 것. 삶이 그 사람만의
것이듯 죽음 또한 그만의 것이겠지요.
누군가 이곳에서 떠났을 때 그와의 이별과
그와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의 부재(不在)를
이유로 자신의 나날을 낭비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의 의미에도 부합하는 게 아닐 겁니다.
2024년의 끄트머리에서 돌아보니 참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어머니가 2월에
떠나셨고 4월엔 사촌동생 이정자와 <Timbuktu
팀북투>의 작가 폴 오스터(Paul Auster:
1947-2024)가 떠나갔습니다.
우연히 펼친 <Timbuktu> 85쪽에서 누군가
떠나고 난 풍경, 즉 제가 죽은 후의 풍경을 만납니다.
상자의 뚜껑이 닫히는 날까지 그 풍경 속에서
즐거우시길 빕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ClRmgsAtf4
(<팀북투>는 윌리 (Willy)와 함께 사는 개 본즈씨
(Mr. Bones)의 시점에서 쓰인 소설입니다. 아래
문단 끝 부분에 나오는 '주인'은 윌리를 뜻합니다.)
The city had not disappeared. The sky had not
burst into flames. Everything was as it had been,
as it would continue to be, and what was done
was done. The houses were still standing, the
wind was still blowing, and his master was
going to die.
도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늘이 갑자기 불타오르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었다. 집들은 여전히 서
있었고 바람도 여전한데, 그의 주인은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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