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전두환들이 모두 죽기 전에 (2021년 12월 7일)

divicom 2021. 12. 7. 10:31

제가 사는 건물엔 열아홉 가구가 사는데

그 중 여섯 집이 조간신문을 구독합니다.

중장년층이 많아서 신문 보는 집이 제법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기자생활을 하며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 신문을 보는 집이 여러 집이고 

제가 보는 신문을 보는 집은 없는 듯합니다.

그래도 저는 새해에도 이 신문을 봐야겠습니다.

바로 이런 글 때문입니다.

 

전두환들이 모두 죽기 전에

모든 일이 너무도 짧은 시간 동안에 일어났다. 1995년 12월21일에 5·18특별법이 제정되었고, 1996년 1월23일 검찰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내란죄 및 내란목적살인죄 혐의로 기소했다. 1심 법원은 전두환을 내란 및 반란의 수괴로 판시하여 사형 판결을 내렸는데, 2심에선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997년 4월17일 대법원에서 형이 최종 확정됐다. 그해 12월18일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고, 그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특별사면을 건의했으며, 전두환과 노태우는 12월22일 석방됐다. 심판이 끝나는 동시에 용서가 시작된 것이다. 21세기에 태어난 세대는 전두환의 범죄를 배우면서 그의 당당한 노년을 목격하느라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결국 김대중 당선자의 결단이었고, 그의 오랜 도덕적·종교적 신념의 이행이었다. 김대중의 ‘화해 사상’은 기독교의 용서 관념에 뿌리를 둔 것으로,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어서 타인을 심판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용서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일 뿐이라는 믿음의 필연적인 귀결이었다(노명환, ‘김대중 화해 사상의 보편성과 특수성’). 박정희 정권에 의해 납치 살해될 뻔했을 때에도 그는 관련자들을 모두 용서했고, 1980년 내란음모사건 공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기 전 최후진술에서도 자신의 죽음에 대한 정치적 보복은 없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1997년의 결단은 평범한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평범한 인간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최소한 세 가지 측면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첫째, 학살 범죄자들이 사과한 적이 없지 않으냐는 것. 김대중은 어느 인터뷰에서 화해와 용서를 분리하기도 했다. 화해는 사과를 전제하는 것이지만, 용서는 먼저 할 수도 있다는 것. 참회하지 않는다고 똑같이 대응할 수는 없다는 것. 둘째,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사회 기강을 훼손했다는 것. 만약 이 비판이 공리주의적인 것이라면, 김대중에게는 더 큰 공리의 명분이 있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적대 진영 간의 통합 없이는 통일이라는 민족 과제의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현실 말이다. 셋째, 김대중 개인 혼자서 용서하고 말면 그만이냐는 것. 이 비판은 앞의 것들과는 달리 논리적으로 반박할 일만은 아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한(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살기 위해 용서한다
그건 권유가 아닌 스스로의 결단
제3자가 진정 권유를 해야 한다면
아직 살아있는 전두환들에게
모든 진실을 밝히라고 하는 일

널리 알려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이에 대해선 강남순의 <용서에 대하여>가 상세하다). 1992년 인종분리정책 폐지 이후 남아공은 진실화해위원회를 조직해 7년 동안 무수한 청문회를 열어서 잔혹했던 인종 분리 정권 치하의 진실을 세상에 드러냈다. 악명 높은 유진 드 콕(Eugene de Kock)을 비롯해 2만2000명이 증언을 했고,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했으며, 그 이후에 6000명이 사면을 청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피해자들 중에는 국가의 ‘사면’과 개인의 ‘용서’는 다르다는 이유로 반발한 경우가 있었다. “용서할 수 있는 정부는 없습니다. 정부는 나의 고통과 아픔을 알지 못합니다.” 하물며 피해자들을 위한 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우리의 경우 ‘사면과 용서의 간극’이 클 수밖에 없다.

 

전두환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저 난제가 미해결로 남게 됐다는 것 말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적 용서의 공간을 누리며 살았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은 거짓 회고록을 쓰거나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골프를 치는 것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 이후에도 전두환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온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용서할 기회를 주는 일이었다. 그가 진실을 밝히고 참회했더라면 피해자들은 그를 용서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피해자들이 용서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 용서가 피해자들 자신을 구원하기 때문이다(강남순은 이를 ‘형이상학적 용서’라고 명명한다). 더는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다른 정체성으로 살아갈 기회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그 기회마저 박탈하며 죽었다.

 

김대중은 훌륭했는데 그의 추종자들은 왜 그렇지 못하냐며 이제는 전두환을 용서할 것을 권유 혹은 훈계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이는 논리적 의구심 이전에 생리학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발언은 윤리적으로 ‘주제넘은’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피해자들은 살기 위해 용서한다. 용서라도 함으로써 자신들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자 자신이 결단하는 것이지 권유받을 일이 아니다. 제3자가 권유라는 것을 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전두환의 휘하에서 성공의 낙수(落水)를 마셔온 아직 살아 있는 전두환들에게, 이제라도 모든 진실을 밝힐 것을 계속 권유하는 일, 피해자들이 지쳐서 더는 할 수 없게 된 그 일을 해야 한다. 전두환들이 모두 죽기 전에, 그리하여 전두환적인 것이 다 죽을 때까지.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12060300095#csidxa2938070ebbc5cdb40f6fac422da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