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아침 전두환 씨가 사망했다는 문자를 받자
제일 먼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죽어서 슬프다는 뜻의 '안됐다'가 아니라
그 사람이 용서를 빌 기회를 놓쳐서 '안됐다'는 것입니다.
나이 든 사람의 죽음은 낡은 육신과의 결별이니
대단히 슬플 것이 없습니다. 슬픈 것은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벼워질 기회이지요.
젊은 시절에 저지른 어리석은 짓에 대해 반성하고
그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한을 다소나마 풀어줄 뿐만 아니라
자신 속 어리석음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행위입니다.
살아있는 시간이 유의미한 것이 되려면 반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성 능력이 없었던 전두환 씨의 경우엔 살아있을 때도
이미 죽은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순자 씨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슬픔에 잠겨 있을지 모릅니다. 오랜 시절 함께하며
세뇌 혹은 그루밍이 되었을 수도 있고, '가족'이 일종의 치외법권적
관계가 되어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그의 가족들은 그보다 낫기를,
그가 하지 못한 반성을 할 수 있기를 빕니다.
누나 이름
태어나기 전에 태명 배냇이름을 짓곤 하지만, 낳고 나서 하는 짓을 보아 보통 이름을 지었다. 할아버지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 작명가가 짓고, 용한 점쟁이나 스님을 찾아가 짓기도 해. 요셉이나 요한으로 짓는 건 기독교에 푹 빠진 부모의 신앙 전성기.
아이가 순하면 순 자를 넣기도 하고, 안 순하고 까탈스러우면 순하게 살라면서 순 자를 넣어 이름을 짓기도 했다. 내 누님 중에 ‘은자, 안자, 경자’까지 있는데, 아버지가 다음으로 ‘순자’라 지을까 하다가 아들이 태어나는 바람에 순자 누나는 세상에 없게 되었다.
다만 쿠데타와 광주 시민 학살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뒤 대통령 자리에 오른 장군의 부인 이름이 땡땡. 누나를 미워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배려해주신 하늘에 감사했어. 부부는 일심동체라던가. 장군이 떠난 뒤라도 부인이나마 광주 시민들에게 참회 사죄하길
바랄 따름이다.
눈이 한바탕 내린 산허리. 쌀쌀한 밤바람에 오금이 저릴 지경. 간만에 큰누나에게 전화를 드려 이름 한번 불러봤다. 자전거 타다 넘어져 뼈가 부러졌다네. 아이고매~ 자전거는
무사한지 물어볼 걸 그랬네. 객지에 나가 있는 조카들 얘길 조르라니. 길에서 만나도 모르고 지나칠 혈육들이 많다. 마스크 집어쓴 세상이다 보니 더더욱 사람 얼굴을 몰라보겠다.
아이들 수능이 끝났어도 학교엘 가더군. 아이들이 학교엘 가는 이유는? 학교가 집에 올 수 없기 때문, 으흑~. 아이들 교복엔 이름표 자리가 따로 있는데, 학교에선 이름표를
꺼내놓고 생활하겠지. 나도 대문에다 이름표를 내걸었다. 이름 따라서 우편물도 배달되고, 누이표 김장김치, 석화 굴젓, 내가 좋아하는 파래김도 가끔 온다. 우편물이 오면 누가 보냈는지 이름부터 살피게 된다. 내 이름을 꾹꾹 눌러썼을 손길을 생각한다. 낳아주신
부모와 제 이름을 욕되지 않게 살아가야 할 텐데.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11250300125#csidxe1152b2fb63d97487a08ea8b7a095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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