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87: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2021년 8월 12일)

divicom 2021. 8. 12. 08:07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나를 아는 당신을 알 뿐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

당신이 무엇으로 빚어졌는지

당신의 시간이 무엇으로

채워졌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나는 당신을 애인으로만

알았습니다 당신 눈길의 열기

당신 손길의 온도를 재는 데

급급했습니다 당신의 세포에 깃든

외로움 좌절 희망 사랑 부끄러움

거의 모든 것을 몰랐습니다

 

나는 당신을 시어머니로만

알았습니다 시어머니는

당신이 늦게 얻은 정체 중

하나였을 뿐인데

 

나는 당신을 아버지로만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잘해내려 무진 애썼던

역할 중 하나였을 뿐인데

 

나는 당신을 존경받는

선배로만 알았습니다

굶주렸던 어린 시절

눈칫밥 먹던 사춘기

인정받기 위해 사력하던

청년은 몰랐습니다

 

나에게 아무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나는 그이를 모릅니다

 

비늘 하나를 보고

물고기를 안다고 할 수 없듯

나는 그이를 알지 못합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이 아는 나는... 나일까요

나는 입을 다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