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84: 노년의 적들 (2021년 7월 19일)

divicom 2021. 7. 19. 08:05

아흔둘 어머니는 그대로 스승입니다.

칭찬은 박하고 비판은 후하던 어머니의 성격은 여전하시지만

그때 '엄만 왜 저럴까?' 하며 속상해하던 저는 이제

저 부분은 유전자, 저 부분은 자신감, 저 부분은 열등감의 소산이구나,

분석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어머니가 무심코 던진 말에 잠시 불쾌할 때는 있지만

오래가는 상처를 받는 일은 드뭅니다. 그런 말은 어머니가 극복하지 못한

문제를 드러낼뿐이니까요.

 

그렇지만 어머니의 문제는 늘 제게 질문을 던집니다.

어머니의 문제가 저것이라면 나의 문제는 무엇일까?

저런 것이 어머니의 성숙을 방해한다면

나의 성숙을 방해하는 오래된 적들은 무엇일까...

그러니 어머니가 무엇을 하든 어머니는 제 스승인 거지요.

 

요즘 어머니가 가장 많이 일깨워주시는 건 외로움입니다.

저는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머니는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요즘은 그 '여러 사람'을 만나시지

못합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는 친하게 지내시던

분들이 대개 돌아가시거나, 거동이 불편하시거나 치매에 걸리셔서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동이 불편해도 듣고 말하는데

불편이 없으면 전화로라도 만날 수 있겠지만 어머니도 친구분들도

귀가 잘 안 들리시니 그 또한 어렵습니다.

 

어제는 어릴 적 제 아이를 길러주신 수양 이모님과 전화로 만나며

어머니의 외로움과 똑같은 외로움을 만났습니다. 어머니보다 두 살

아래이신 이모님에겐 고교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는데

그 분은 치매 환자가 되었고 또 다른 친한 친구는 심한 요실금으로

고생하시는데다 귀가 들리지 않아 전화로도 만나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이모님 자신은 허리 수술을 받다 의료사고를 당해 집안에서도

휠체어를 타시지만 청력도 정신도 말짱하시니 '불행 중 다행'이지요.

 

노래교실을 일주일에 네 번이나 나가시던 제 어머니가

보청기를 끼고도 대화하기 어렵게 되시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누구보다 명료하게 하시고 깔끔하기로 소문났던

이모님의 친구가 요실금과 난청에 잡혀 꼼짝달싹 못하게 되실 거라고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노년은 그냥 피부에 주름이 생기고 빛이 사라지며 키가 작아지는

시기가 아닙니다. 노년은 자신을 빛나게 하던 생기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자신이 타인과 맺고 있던 관계들과도 결별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그 결별은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겁니다.

 

요즘 어머니를 만날 때면 '할 수 없이 닦아도 도(道)는 도'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외출을 좋아하시던 어머니에게 걷는 일이 힘겨워지며

집안에 머무시는 시간이 늘어나고, 친구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시는데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시면서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상황에 적응해 가십니다.

 

저는 언제까지 살아 있을까요? 혹시라도 어머니나 이모님 연세까지

살아있게 된다면, 그때 제 귀와 눈과 모든 기관들은 제대로 작동 중일까요?

그때도 저는 여전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