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버스 폭발 (2010년 8월 10일)

divicom 2010. 8. 10. 08:51

외출을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이다 보니, 나갈 일이 있을 때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탑니다.

거리의 변화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읽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닫힌 공간을 싫어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에서 제일 가까운 정거장엔 초록 버스와 파란 버스가

서는데, 저는 특히 파란 버스를 좋아합니다. 파란 버스는 주로 버스전용차선으로 달리기

때문에 거리 구경을 하면서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어제 서울 행당동에서 운행 중 폭발해 시민 열일곱 명을 다치게 한 버스는 241번 파란 버스.

언젠가 강남에 갔을 때 타본 적이 있습니다. 언론과 뉴스를 접하는 대개의 사람들에게

사건이나 사고의 크기는 사망자와 부상자의 수로 결정됩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지만,

열일곱이나 되는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고, 두 발을 잃은 젊은 여성도 있다고 합니다.

 

단지 그냥 그 시각에 그 버스를 타고 있었을 뿐인데,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버스를 타지 않았던 사람들은 오늘부터 그 사고를 잊어가겠지만, 그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삶은 오늘부터 한참, 아니 어쩌면 일생 동안 그 사고의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외상)로 인해 버스를 타지 못하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신과 치료와 재활훈련을 받으며 2010년 8월 9일의 악몽과 싸우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놀라운 것은 전문가들과 서울시가 이 버스와 같은 압축천연가스(CNG: compressed natural gas)

이용 버스들의 폭발 위험성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일보에는 "CNG연료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연료용기의 품질 불량일 가능성이 크다... 2만대가 넘는 버스 연료용기에

대한 품질관리가 충분하지 못해 사고가 반복된다"는 한성대 기계시스템공학과 윤재건 교수

견해가 실려 있습니다. 그 기사엔 또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CNG 시내버스에 사용되는 가스통 중 문제의 소지가 있는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소재로 만들어진 '타입 원'을 탄소 복합소재로 만든 연료통으로 교체할 것을

현대차 등 제조업체에 권고해왔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버스도 타입 원의 연료통이 달려있었다.

2002년 도시의 대기질 개선을 위해 도입됐던 CNG 버스는 전국에 2만1,000대(2009년 6월 추산)

가량 있으며, 환경부는 2012년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90%인 2만8,000대를 CNG 버스로 교체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제조업체 등에 연료통을 교체해달라고 권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는데,

언제부터 서울시가 이렇게 민주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5년간 발생한 CNG 버스 폭발사고가

여덟 건이나 되는데, 평소엔 시민의 의사에 반하는 일도 곧잘 강행하던 서울시가, 왜 이 건에

대해서는 권고만 했느냐는 겁니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높으신 분들의 수가 적어서 그랬거나,

제조업체가 중소기업이 아니고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라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힘없는

소시민의 피해의식일까요? 

 

'개그콘서트' 식으로 말하자면, 버스를 한 번 탈 때도 목숨을 걸거나 상해를 입을 각오를 해야 하는

'더러운 세상'입니다. 이번 사고의 피해자들이 가능한 한 빨리 사고의 후유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