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잘 모르면서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논쟁을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과 동석하면 참 피곤합니다.
가능하면 그런 자리를 피하는데 하는 수 없이 동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저로선 분주했던 어제... 이미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 아이 같은 논쟁을 듣고 있으니
두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5년이 되는 날인데,
왜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런 쓸데없는 논쟁이나 하고 있는가 분노마저 일었습니다.
약을 먹고 잤지만 계속 열이 오릅니다.
다시 한 번 제 함량 미달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온 지 60년이 넘었지만 이곳은 늘 낯설고 이곳에서의 삶은 힘겹습니다.
어제는 세월호가 남쪽 바다에서 침몰한 지 5년 되는 날,
종일 세월호의 그림자 속에 머물렀습니다.
5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사건의 진실,
막강한 거짓에 휘둘리며 '그만 우려먹으라'고 외치는 어리석은 사람들...
인디밴드 지미 스트레인의 페이스북 글에서 제 마음을 보았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이 링크를 클릭하면 관련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맨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지미 스트레인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만든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jimmystrai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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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416 - 190416 >
이제 채 3시간도 남지 않았다, 그날의 그 순간까지.
그날도 작업하느라 밤을 샌 수요일이었다. 그 덕에 제법 이른 아침에 뉴스를 볼 수 있었다. '학생 전원 구조'니 하는 말을 들었던 그때는 몰랐다, 그 배가 대한민국에서 헬조선의 농도를 드러내는 카나리아이자 이성, 감성 그리고 감정을 구분하는 7천 톤짜리 리트머스가 될 줄을.
참 많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토록 여러 가지를 보는 동안 보고픈 것과 보고싶지 않은 것을 선택할 권리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들 덕에 배웠다, 선보다 악이 다채롭다는 것을. 몰상식과 무례와 비양심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것도.
자식을 잃고 식음을 전폐한 부모들과 그들에 대한 위로이자, '어른으로서'의 부끄러움, '살아있는 자'로서의 미안함으로 함께 단식에 동조한 이들에 대해 폭식을 하는 이들을 보았다. '폭식'에 '투쟁'을 붙이는 것은 정치적 성향이나 의견따위와 무관하게, 반인륜적 범죄다. 적어도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식량은 고사하고 물조차 마음껏 먹지 못하는지 안다면.
머리에 구름을 쓴 백기완 선생을 보았다. 낡은 수레처럼 길 위에서 손자라고 하기에도 어릴 아이들의 이름을 대열의 맨 앞에서 부르다 종로 어느 빌딩의 화장실로 들어가던 하얀 옷의 노구老軀를 보았다. 그 덕에 알았다, 어떤 사람은 승리를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냥, 그때 그때,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을 때까지, 그저 옳다고 믿는 그 방향을 향해 앞으로 계속 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각 분야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해야 했다. 하고 싶고, 해야 했지만, 그보다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하고픈 것을 하면서 밤을 샜지만, 이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안 하면, 죽을 때까지 밤에 잠을 설칠 것 같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사건 자체가 가지는 인간사적 의미가 너무나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출세를 했을때, 오래 기다려야 할 때, 몹시 외로울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듯, 개인과 집단과 사회와 국가의 벌거벗은 몸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을 21세기에, 세계 10위권 경제 국가에서 맞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4집 'Jimmy Strain'에 수록된 곡 중에 세월호에 관한 것은 한두 곡이 아니다. 다만, 내가 '세월호와 엮어 소개하지 않(았)을 뿐'이다. 최근 시작한 <The Revisiting, Not Repeating> 시리즈를 통해 각 곡에 관한 뒷이야기를 하곤 있지만, 지금까지는 딱히 설명한 적이 없었다. 그 시리즈에서 곡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므로, 이곳에 음반 표지에 대한 이야기를 적는다.
4집 표지는 부클릿에 표기한 바와 같이 내가 디자인했다.
이 음반의 표지는 두 장의 사진으로 이뤄져 있다. 첫 사진은 서울에서 팽목항에 가기 위해 탄 KTX 호남선에서 찍은 사진이다. 기억이 맞다면, 대략 시속 250~270km 였을 때 찍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나야 했고, 이를 위해 날아가는 새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마치 누군가가 나의 바람을 듣고 응답이라도 해준 것처럼 까마귀로 추정되는 새 두 마리를 보내줬고, 싸구려 카메라는 새들과 함께 용케 전신주 두 개마저 대칭되는 위치에서 순간을 포착했다. 또 한 장의 사진으로 침묵을 담을 필요가 있었다. 마침내 침묵을 담는데 성공했으니 아침의 해수면이다. 고요한 해수면은 실체화된 침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바다를 거꾸로 뒤집어 남쪽으로 가는 순간의 하늘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음반커버는 거꾸로된 침묵의 바다와 남쪽으로 향하는 순간을 각각 하늘과 땅으로 결합한 결과물이다.
우에서 좌로 이동하는 순간을 담은 것은 글을 쓰는 방향(지금 이 글과 같이 좌에서 우)에 반대를 표현하여, 역행逆行 즉, 퇴보退步를 의미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고도의 기점이 되는 해수면이 "거꾸로" 하늘에 가 붙어있다. 나는 이 커버에 그 전까지 1~3집, EP 등을 만들며 드러냈던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을 2014년 4월 16일을 통해 압축/정제하여 담고 싶었다.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극에 맞서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창작물을 만들고 그 비극에 대한 기억과 상징을 담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도 비극은 있었다, 아주 많았다.
일제 강점기에도 나라가 한창 '발전하던' 시기에도, 밥을 굶지 않아도 되고 '부자나라'가 되기까지, 젊으면 젊다고, 나이가 많으면 늙었다고, 없으면 없다고 그리고 빨갛다고. 우리는 무수한 '말없는 비극'을 파묻고 그 위에 빛나는 철근콘크리트의 기적을 세웠다. 하루에 40여 명을 자살시키고, 대놓고 또 때로는 보이지 않게 밤낮없이 차별하며, 학생들을 침몰하는 배에서 구하지 못하고, 목숨을 걸고 시신을 수습해온 잠수사조차 자살시키며, 스스로를 용서 못한 선생님도 자살케하고, 타인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던 의인이 외로운 죽음을 맞게 하며, 그러고도 여전히 새파란 청년을 화력발전소에서 사망케하는 나라.
이 나라는 사람을 갈아 마시며 달리는 짐승이다.
100년 전,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무수히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기꺼이 짐승의 입에 뛰어들었다. 안락과 안정을 버리는 것은 다반사고, 존경받는 직업과 처자식을 등진 매헌 윤봉길이나, 자식을 신으로 승화시킨 어머니(조瑪利亞/趙姓女)와 신이 된 아들 도마 안중근처럼 거대한 괴물에 맞선 영웅들도 있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나를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생존자'들은, 비로소 '우연의 국가'로부터 독립을 맞이했다. 이 땅에 살아있는 자는 이제 더이상 '우연'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월세를 못내고 자살한 '세 모녀'의 미안하다는 유서에 대해서도, 누구도 찾지 않는 골방에서 홀로 죽음을 맞은 무수한 노인들과 집값 떨어진다고 특수학교를 못 짓게 해서 서너 시간씩 길에 뿌려가며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장애인 부모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저 '우연'이라 말할 기회를 강제로 박탈당했다.
5년 전 오늘.
드디어 우리는 우리가 맞고 목격하는 모든 비극에 대해 '인과'를 논하고, '의의'를 반추해야 할 <의무의 제국>에 자랑스런 신민이 된 것이다.
사람을 갈아서 세운 제국에서 비로소 완전한 만인의 평등이 이뤄졌다. 장애, 비장애, 남녀노소, 출신, 학력 등 모든 스펙을 넘어 우리 모두는 부끄러움 앞에서 평등하다. 수치심과 미안함 앞에서 부끄럽다. 죽는 그 순간까지 먼저 떠난 이들의 짧았던 생을 짊어진, 채무자들이다.
"뒷일을 부탁합니다" - 故 김관홍 잠수사
모든 역사는 '뒷일'을 위해 존재하며,
'앞일'에 대한 반추와 성찰에 반드시 인과적이다.
아, 나는 오늘 몹시 부끄럽다.
그 뒷일, 모른척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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